내가 이십대 초중반때 일이다. 그때 같이 놀던 한 그룹의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걔네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도 왠만큼 잘 했으니 1.5세에 속했으나, 당시 아주 티피컬한 1.5세였던 나와는 여러면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1.9세쯤 되는 애들이었다. 우선 라이프 스타일부터가 달랐다. 걔네들은 벌써 학교도 졸업하고 일을 하며 돈을 벌 때였고, 남친이 없던 그녀들은 한달에 한번씩 자기네들끼리 모여 뮤지컬을 보거나 비싼 식당에 가서 분위기 내는걸 즐겨했다. 명품 물건들은 당시 그녀들의 대화에 중심이었고, 난 그녀들을 통해 프라다나 페라가모 따위의 물건들을 처음 구경하기도 했다. 그때 난 투잡을 뛰었었고, 연애도 했었고, 졸업쯤을 맞이해 갑자기 불붙은 공부의 재미에 푹 빠져서 솔직히 놀 시간따윈 없었는데, 그리고 같이 뮤지컬 가거나 비싼 식당에 갈 돈도 없는 가난한 학생이었는데, 그래서 그녀들이 나를 자꾸 불러 그 그룹에 속하게 하려는게 이해가 안갔었다. 그래도 난 그들의 호의에 대한 고마움에 나름 시간을 내 그녀들과 같이 어울렸었다. 나와 가까웠던 몇몇 사람들은 내가 그 그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같이 어울리는걸 못마땅해 했었지만, 난 나와 아주 다른 사람들과 한번 어울려보고 싶은 호기심에 그런 말들을 무시하고 계속 어울렸다.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나와는 아아아주 다른 사람들이었고 당연히 끝은 아주 안좋게 끝났다. 세대차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여자들끼리의 시샘과 신경전, 계략들과 뒷담화. 내가 생각하는 “우정”과는 너무나 다른 “우정”의 definition을 가진 그녀들과의 헤어짐은 언제간 일어날게 뻔한것 이었겠으나, 순진했지만 또 나이브했던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때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어쨌는지, 그 이후로 난 남친 없는 여자들로만 꽁꽁 뭉친 그룹은 좀 경계하는 편이다. 풉.
그떄 생긴 버릇일까. 아니, 원래의 내 성격이겠다만. 난 어느 순간부터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안보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생각이야 다 다르겠다만은, 그리고 그건 아주 당연한 거겠다만은, 아주 기본적인 value system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못 어울린다는걸 깨닳았기 떄문이다. 끼리끼리 논다? 햐. 옛날 어르신들 진짜 똑똑해 그러고보면. 보고싶은 사람만 보고 살기에도 이렇게 시간이 없는데 왜 내가 보기 싫은 사람들과 보대끼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해? 상식이 안 통하는데 풀긴 뭘 풀어? 그냥 서로 안보면 편한것을. 그래서 난 인정사정없이 목을 댕강 잘라내는 망나니처럼 사람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일을 아주 잘한다. 냉정하게.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다. 아무 문제 없이. 내가 사람들과의 문제점들을 굳이 풀려고 하지 않고 그냥 묻어둘려고 했던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한두번의 대화로 쉽게 풀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고, 난 이미 상처를 받았고, 혼란스러웠고, 또 뭔가를 누구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는게 귀찮고, 힘들고, 그냥 하기 싫었다. 정말, 누군가에게 내 입장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구차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그것이 한때 가까웠던 사람일수록 더.
딱 일주일 사이에 네 사람이 나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어느날 한 사람은 내 집 문앞에 와서 문을 두들겼고, 그 다음날 한 사람은 문자와 전화 메세지를 남겼고, 그 다음날 한 사람은 이메일을 보냈고, 그 다음날 한 사람은 내가 하지도 않는 페이스북을 통해 메세지를 보냈다. 딱 폭탄맞은 기분이었고 심적으로 너무 힘든 일주일이었다. 아, 물론 지금도 많이 힘들다. 나를 다시 찾는 그 사람들이 딱히 고맙지도 않을만큼.
이메일과 페이스북은 아직 손도 못댔고, 집에 찾아온 사람과 전화한 사람과는 대화를 했다. 대화를 하고 또 했다. 설명 하고. 설명 듣고. 또 설명 하고. 또 설명 듣고. 다른날 또 대화를 했다. 한번 대화 할때마다 힘이 쪼옥 빠진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 또 숨고 싶고 또 피해버리고 싶다. 그 설명해야 함의 구차함이 너무 비참하다.
그러면서 참 안타깝고 슬프기도 하다. 한번 비틀어진 관계는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걸 알기에.
여태껏 내가 잘라냈던 사람들과 다시 화해를 한적이 없다. 그래서 화해란 것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좋다. 오해들을 풀고 화해란걸 한다 치자. 결국 입장차이 아니던가. 이해했다 치자. 그럼 그 다음은? 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친하게 지내? 분명 내 속에선 뭔가가 바뀌었는데? 그럼 내가 왜 그런 가식적인 관계를 이어가야 하지? 그런건 사회생활에서도 충분히 하는데?
입장의 차이를 이해했는데도 내 마음이 예전같지 않다는건 내가 소인배여서인가. Forgive & forget 하지 못하는 이유는 뒷끝이 많은 나의 쪼잔한 인품때문인가. 화해의 손을 반갑게 맞이 못하는건 나의 쥐똥만한 그릇때문인가.
모든 문제는 대화로 푸는게 답이란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식이 옳은 방식이 아니란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내가 제일 쉽게 할수 있는 방식이었고 여태껏 날 편안하게 만들어준 유일한 방식이었다.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하는 요즘. 내 자신과 내가 여태껏 해왔던 인간관계 방식에 대해 많은 회의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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