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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3월, 2010

누가 밥이나 한번 같이 먹잰다. 남자다. 자기가 사겠댄다. 아무거나 내가 먹고싶은거로. 그 남자에겐 나에게 밥을 사줄 핑계도 있다. 내가 무슨 도움을 줬거든. 밥을 얻어먹을 일이라 생각하면 그럴수도 있는 일이지만 내 생각엔 굳이 얻어먹지 않아도 될일이다. 내 느낌엔 나에게 호감이 있는것 같고 나를 알고싶어 하는것 같다. 하긴, 남자는 아무 여자에게나 밥사준다 그러진 않지. 솔직히는 나가서 갈비 얻어먹고 오고 싶다. 나 요즘 몇일동안  갈비가 땡겼거든. 나의 나이브함으로는 뭐, 그까짓 밥한끼가 뭐가 어디가 어때서라는 생각도 든다. 밥사준다고 해서 나갔고, 잘 얻어 먹었고, 좋은 얘기 나눴고, 그러고 커피라도 한잔 사주고 오면 땡이지. 내가 꼭 여자하고만 밥을 먹어야 하는건 아니잖아?

하지만 난 거절했다. 아니, 우선은 바쁘다는 핑계로 조금 미뤄놓은 상태다. 난 분명 그 남자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고있다. 난 그 남자를 잘은 모르지만 약간의 호감정도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난 지금은 내앞에 장동건이나 조니 뎁을 대려온다해도 덤벼들지 못하는 상태다. 약간은 남자 기피증이 생긴 상태라고나 할까. 남자가 좀 무섭다. 그리고 뭔가, 빤하게 보인다. 밥먹으면 이것저것 개인적인 얘기들을 나눌테고, 난 분명 웃으며 얘기를 잘 할테고, 그 남자는 나에게 더 호감을 느낄테고, 나와의 사이를 좁히려 할꺼다. 내가 공주병이라고? 이건 공주병이 아니야. 경험이지.

난 오해받는게 지겹다. 나의 친절을 제멋대로 해석해버리는 남자들의 자신감이 지겹다. 난 분명 이성관계에서 뭔가 질질 흘리고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다. 문어장 관리같은건 해본적도 없고, 소질도 없으며 (그거, 분명 소질 있어야 하는거다!),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배푸는 친절은 사람대 사람으로 배푸는 친절인거고 내가 배풀만 하니까 배푸는 친절일 뿐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꼭 오해한다. 말해주고 싶다. 내가 당신에게 관심이 있고 만약 꼬시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때의 내모습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꺼라고. 지금의 내 눈빛은 그때의 눈빛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을꺼라고. 당신이 아직 그걸 못봐서 모르는것 뿐이라고. 젠장. 

그래, 사람은 다 오해한다. 나도 오해하고 남자들도 오해할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게 오해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다음 단계로 가기전에 내마음이 어떤가 확인부터 해봐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자신에 대해 어느정도의 호감을 느끼고 있는지, 꼬임에 넘어가줄 의향이 있는지, 우선 그것부터 확인하고 손을 잡던가 말던가 해야하는것 아닌가? 그냥 자신의 느낌대로 불도저처럼 밀어부치면 내가 순순히 따라가주는 여자로 보이나? 난 조선시대 여자가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은 내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김치국을 마셨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그려놓은 미래의 그림에 나를 껴맞추려했다. 너무 공격적으로 다가와 내가 부담스러워서 그의 연락을 무시하자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한마디 했다. 난 설명을 해야할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설명을 안한것 뿐인데. 또 어떤 사람은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손을 슬그머니 잡으며 내가 자신의 이상형이라 했다. 내가 조금전에 아들사진을 보고는 아들이 아빠닮아서 귀엽네요… 라고 했는데. 두 케이스다 난 어, 어, 하다가 슬그머니 손을 빼는것으로 일단락했다. 그리고 난 웃었다. 왜? 난 당황하면 웃거든. 버릇이고 처세술이다. 그렇게 웃음으로 당황함을 덮으려하는. 그런데 그렇게 웃으니 남자들은 내가 좋았다는 표현을 하는줄 아나보다. 난 궁금하다. 난 그때 얼굴을 싹 바꾸고 싸가지가 바가지인 여자로 바뀌어 싸대기라도 한대 날려줬어야 하는건가?

난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젠 남자와 단둘이 밥도 못먹겠다. 내가 분명 무슨 오해할 소지를 주나본데, 난 내가 도데체 무엇으로 남자들을 오해하게끔 만드는건지 잘 모르겠다. 도아니면 모인 내 성격으로는 아예 남자들이랑은 말도 하지말고 웃지도 말아햐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님 진짜 싸가지없는 여자가 되던가. 그런데 그건 내가 아니잖아. 왜 내가 내가 아닌 나를 연출해야 하는거지?

내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할지 모르니 남자가 밥 한번 먹자는 말이 무서워지고 있다. 젠장.

P.S. 이소라 새로나온 앨범, 어렵게 구해서 듣고 있는데, 이 여자, 역시 내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내일 일 갈려면 잠도 자야 하는데 음악듣느라 잠자기가 싫을 정도다. 아. 이여자는 가수 계속 해야돼. 이렇게 가끔씩이라도 좋다. 제발 앨범만 계속 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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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엔 짜빠게티를 하나 끓여 먹었다. 난 라면같은건 별로 안좋아해서 일년에 몇번 먹을까 말까 하는데, 혼자 살다보니 어쩔수없이 비상용으로 몇개 사다놓았다. 라면은 너구리랑 짜빠게티랑 사다놨는데, 너구리는 가끔 냉동해물과 다시마를 넣고 끓여먹으면 맛있다. 짜빠게티는 뭐랄까… 밥은 하기 싫은데 너구리는 안땡길때 먹는 라면이라고나 할까. 가끔 내가 지금 뭐가 먹고 싶은건지 잘 모를때, 양손에 너구리와 짜빠게티를 들고 벌이는 고민은 짜장면과 짬뽕을 두고 벌이는 고민과 비슷하다. 맨날 짜장면을 시키면서도 결코 생략할수는 없는 그 심각한 고민이라니. 오늘은 어렸을때 먹었던 짜장면이 생각이 나길래 계란 후라이도 하나 해서 얹어 먹었다. 욕심엔 오이도 채썰어서 넣고 싶었지만 그건 욕심일뿐 (내집에 오이가 있었으면 내가 아예 짜장면집을 했겠다!). 그래서 오늘 짜파게티를 먹은 소감은? 짜파게티는 계란 후라이를 얹는다 해도 결코 짜장면이 될수 없다! ㅋ 

우리집은 애들이 넷이다. 언니, 오빠, 쌍둥이 언니, 그리고 나 (나보다 15분 먼저 태어났으니 예의상 내앞에 껴준다. 칫). 우리집은 지금 생각해보면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밥도 못먹을만큼 가난한 집은 아니었다.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었다. 엄마가 참 알뜰살뜰하게 살아서였다. 뭐, 좋게 말해서 알뜰살뜰이지, 울 엄마는 우리한테 참 짜게 굴었었다. 우린 그 흔한 과자나 아이스크림도 대청소를 한다거나, 엄마일을 도와준다거나, 그런 노동의 댓가로 얻어먹었었다. 아직까지도 간식거리를 안찾는 저렴한 입맛을 만들어주고, 세상에 공짜는 없음을 일찌감치 알켜주신 울 엄마에게 감, 감사합니다. 하지만 가끔 횡재하는 날도 있었으니, 그날은 다들 똘망똘망 모여서 “캔디캔디”를 보던 일요일 아침이었다. 엄마도 우리랑 같이 봤었는데, 내 기억엔, “캔디캔디”가 끝나면 “톰소여의 모험”이란 만화가 했었고, 그 만화 후엔 무슨 교육채널에서 하던  “명작영화” 같은게 했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라던가 “로마의 휴일” 같은거 해주던. 울 엄마가 그 채널에서 해주던 영화들을 참 좋아했었는데, 일요일 아침에 울 엄마는 오랜만에 영화도 보고 싶었을테고 밥도 하기 싫었을테다. 그래서 그런지 언니와 오빠가 눈치보다가 벌이는 짜장면을 시켜먹자는 꼬임에 아주 순순히 넘어가주곤 했다 (꼬랑지였던 나와 내 쌍둥이 언니는 이런 일에는 감히 끼어들지도 못하고, 머리들이 벌이는 작전이 무사히 성공하기만을 마음졸이며 지켜보고만 있었다).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면 우린 배달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일제히 다 짜장면을 시켰었고, 서비스로 받는 군만두는 오자마자 없어지곤 했었다. 난 아직도 군만두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어렸을때 급히 먹다가 한번 심하게 체했던것 같다.

우리 언니는 나보다 6살이 많고 우리 오빠는 4살이 많다. 어렸을때 그만큼의 나이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먹는 속도가 다르고 양이 다르다. 참고로 우리집 애들은 그제나 이제나 식성이 끝내주는데, 음시도 맛있게 먹어서, 우리가 밥먹을때 들리시는 어르신들은 벌써 식사를 하셨더라도 우리의 먹는 모습에 또 같이 드시곤 했다. 엄마가 가끔 양푼에다가 밥을 비벼서 숫가락 네개를 꼽아서 가져올때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 얘들 참 맛있게 잘 먹네… 이러며 흐뭇하게 바라볼 일이언정, 나와 내 쌍둥이 언니에겐 이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었다. 우리 꼬랑지들은 정말 살아남기 위해 먹었었고, 그 경쟁은 참 눈물나는 경쟁이었다. 이런 장면은 당연히 짜장면을 시켜먹을땐 더 심하게 나타났었다. 먼저 먹은 놈은 (언니와 오빠) 아직 먹고 있는 놈의 (쌍둥이 언니와 나) 그릇을 호시탐탐 노렸었고, 음식에 침을 뱉는다던가 하는 치사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난 울 오빠가 그랬던거 분명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먹던 짜장면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고, 난 아직도 그 짜장면의 맛을 잊지 못한다. 그 후로도 난 얼마나 많은 짜장면을 먹었던가. 그런데 그때처럼 맛있게 먹었던적은 없다. 아직도 어디가서 짜장면을 먹을때마다 실망한다. 그때의 맛이 아니야… 요즘 왜 이렇게 짜장면을 못할까… 내가 입맛이 바꼈나…

하지만 그때 그 짜장면이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지금은 알것같다. 언니 오빠에게 안뺏길려고 손으로 움켜쥐고 먹던 짜장면. 그때 느꼈던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한입이라도 더 먹어야 될것 같던 경쟁심. 조마조마해하며 먹던 그때의 느낌이 그 짜장면을 그렇게 맛있게 만들었단걸. 읽는 분들은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그때의 전쟁터 같았던 집안꼴과 그때 벌였던 몸싸움들은, 배로 전해져 오던 포만감과 짜장면 소스로 범벅이 된 얼굴들과 겹쳐지고, 우리들이 만들어내던 꺄르르 웃음소리와 포기하고 같이 웃던 울 엄마의 얼굴과 함께, 나에겐 아주 소중한 어린시절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참 오랜만에 기억나는 장면들과 느낌이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나에게 그런 행복한 어린시절이 있었다는게 조금은 뭉클한 지금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을 만들어준 가족한테 갑자기 고맙다. 다음번 집에 가면 가족이랑 짜장면 먹으러 가야겠다. 어린 조카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이 어렸을때 만들어냈던, 그 난잡스러움을 재현해 준다면 참 고마울것 같다. 어쩌면 오랜만에 아주 맛있는 짜장면을 먹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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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에고. 나 지금 아주 죽갔소. 밥맛도 없고 약발도 안듣는구려. 내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아픔으로 고생을 한다는것 자체가 믿겨지지가 않소.

잠깐. 심심한데 어디 계산이나 한번 해봅시다. 그러니까… 내가 이 손님을 맞기 시작한게 한 만으로 열한살때쯤 이었던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이 안나니 대충 열둘로 치고. 더하기 빼기 해보면 내 지금 22년동안 매달 꼬박꼬박 이 반갑지많은 않은 손님을 맞았다는 소리 아니겠소? 그럼 지금부턴 암산 안되니 어디 계산기좀 두둘겨 봅시다. 탁탁 탁탁. 22년 곱하기 일년에 12번은  264번. 일년은 52주니까, 또 탁탁 탁탁.  답이 5.07 년이라 하오. 대충 5년이라 쳐도, 내 지금 내인생의 5년이란 시간을 이 아픔으로 고생하며 살아왔다는구려. 5년이라… 남자도 군대 3년 갔다오면 (지금은 3년이 아니라지요?) 병장 짬밥은 되는데, 이거, 5년정도 했으면 적어도 중사나 상사정도의 짬밥은 되지 않겠소? 근데 난 왜 맴날 이등병 짬밥이냔 말이오. 젠장.

남자분들은 여자분들이 한달에 한번씩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걸 잘 알고 있을꺼요. 물론 망할놈의 호르몬이 주범이긴 하나, 또 다른 이유가 있다오. 그러니까, 여자는 몸속에 꽃단장 하고 기다리는 난자님이 계시지 않겠소? 그리고 그 난자님이 다소곳이 앉아있는 방에, 자유영, 배영, 접영까지 마스터한, 수영좀 하시는 킹왕짱 정자님이 드릴로 덜덜덜 문에 구멍뚫고 들어가서 둘이 상봉을 해야 새생명이 만들어 지는거 아니겠소? 그런데 그 수영잘하는 킹왕짱 정자님이 드릴 들고 면회를 안오시니, 성질급한 난자님은 몇일 기다리다가 지쳐서 분신자살을 해버리는거 아니겠소? 그 분신자살한 몸이 산산분해가 되어 사약마신 폐비마냥 방밖으로 끌려나가면, 한달 뒤에는 다른 꽃단장한 난자님이 또 와서 기다리고 있소. 그게 내가 알고 있는 한달에 한번 오시는 손님의 비밀이요.     

그런데 말이오… 여자는 본능적으로 새생명을 만들고 싶어 한다오. 그 난자님도 그렇게 새생명을 만들고 싶어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던 거라오. 그래서 새생명을 만들고 싶어했고, 준비도 되있었지만, 차마 만들어내지 못한 난자님이 산산분해되어 가시는게 여자들은 슬픈거라오. 꼭 못다핀 꽃 한송이처럼. 왜 여자들이 한달에 한번 손님이 오면 그렇게 날카로와지고 슬퍼하는지, 이제 알겠소들?

그런데 참 웃기기도 하오. 이렇게 고생할때마다 이런 손님따위는 안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게 여자라오. 이 손님때문에 뭘 하고싶어도 못하는게 수두룩 하다오. 또 손님과 꼭 수반하는 고통 때문이라도 남자로 태어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오. 언제나 안오려나, 언제나 안오려나. 그런데 막상 안오기 시작하면 여자들은 또 슬퍼한다오. 이제는 새생명도 못만들어내니 여자로서는 끝이라 생각한다오. 평생을 안오기만을 기다렸건만, 막상 안오니 더 슬퍼하는 여자들. 이래서 여자로 산다는건 참 슬픈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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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인 성당이 집 근처 어디에 있는지 찾았냈다. 집에 한인록이 없던터라 여기저기 전화하며 알아냈다. 아침엔 미국사람들이 본당에서 미사를 드린댄다. 미국 사람들의 성당를 빌려쓰나보다. 한국사람들의 대미사는 저녁때라 하니 내일 시간맞춰 한번 가볼 생각이다.

내가 저번에도 밝힌적이 있으니, 난 날라리 천주교 신자다. 마지막 영성체 했던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천주교 신자들은 평상시 성당에 안 가더라도 의무적으로 일년에 두번은 꼭 가야한다. 부활절과 성탄절날. 그날은 꼭 가서 미사를 드려야하고 그렇게 안하는건 대죄에 속하는 일인데, 난 그것도 안하니 날라리 신도가 맞다. 솔직히 매주 미사를 드리다가 한주라도 빠지면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해야 다시 영성체를 할수 있는데 (아님 받을수 있는데?), 그거 대따 귀찮은 일이다. 몇번 해봤는데 할때마다 참 곤욕스럽다. 딱히 뭐라 할지도 모르겠고. 왜, 죄라고 생각하면 다 죄다보니 어디서 그만둬야 하는지 선을 잘 모르겠는. 하기 싫은걸 하려다보니 그런 형식스러움이 버거울때도 있는. 근데 괜히 고백성사 안하고는 영성체를 못하겠는 (이게, 지금 그냥 사람한테 거짓말 하는건 아니잖아?). 그래서 그냥 영성체 안하고 미사만 드리고 오는적도 많았다. 신부님도 신도들의 그런 마음을 다 아시는듯하다. 어느날 미사중에 신부님이 그러시길, 사는게 죄지요… 라는 식의 고백성사는 안해도 되다는 말을 해서 웃은적이 있다. 나이드신 분들이 가끔 그러시나보다. 하긴, 사는게 죄라는 말도 맞긴 맞다. ㅋ

천주교에서 드리는 미사는 한국의 제사와 많이 비슷하다. 절차가 딱딱 정해져 있는데,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보다도 더 절차적이다. 매주마다 바티칸에서 그 주의 설교 메세지를 전세계 성당으로 보내므로, 전 세계의 모든 천주교 신자들은 같은 메세지를 다 같은날 성당에서 듣는다. 교회에서처럼의 그렇게 주관적인 설교가 아니다보니 좀 메마르고 재미없을때도 많다. 또한 미사 드리는 내내 신도들은 앉았다 일어났다 해야하고, 노래도 성가대와 한구절씩 주고 받으며 불러야하고, 신부님이 한말씀하면 거기에 답을 해야 하는등, 모르는 사람이 가면 당황할 일들이 많다. 나도 처음 미사를 드리러 갔을때 많이 당황했었고, 쭈뻣쭈뻣 옆사람들이 하는걸 따라하며, 그 사람들이 그 많은 절차를 다 외어서 하는게 신기했었다. 하지만 반복수업의 힘은 강한법! 나도 몇달이 지나고 나니 저절로 외어서 하게 되었고 어느덧 그 절차들을 하나하나 즐기고 있었다. 그러고는 어느날, 신기하게도 그 절차들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다. 

신은 사람이 만들어 낸것이 아닐지라도 종교는 사람이 만들어 낸거다. 그러므로 신은 완벽하지만 종교는 완벽하지 않다. 이 글에서 내 자신의 종교에 관한 생각을 깊게 쓰고 싶지는 않다. 글이 너무 길어질것 같고, 쓰다가 내머리가 복잡해질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는 나도 모르게 다른 종교를 비판하게 될것 같은데 그러기가 싫어서이다. 종교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고, 그래서 그게 무엇이던간에 서로 존중해 줘야 하는거지 결코 다른 사람에게 심판받거나 비난받아야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모든 종교는 완벽하지 않으므로 서로 꼬리물고 늘어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가끔 한국에서부터 들리는, 부처님 오신 날에 어떤 교회가 절에 축하인사를 전해왔고, 예수님 탄생일에 어떤 절에서 교회에 축하인사를 전했다 카더라… 그런 소식을 들을땐 참 기분이 좋다. 그들이 진정 모든 종교의 중심인 사랑을 행하는것 같아서. 바뀌라 강요하지않고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난 내일 미사를 드릴 시간이 좀 기대되고 있다. 내가 힘들다고 하나님께 징징대려 갈려는게 아니다. 내가 아직도 못풀고 있는 종교문제에 대해 하나님과 드디어 맞장뜨러 가는것도 아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것도 아니다. 가서 그냥 조용히 미사만 드리고 오고 싶다. 가서 그 형식적으로 보이는 많은 절차들을 따라하고, 내가 좋아하는 대영광송이나 한번 부르고, 그리고 조용히 감사기도나 한번 드리고 오고 싶다. 영성체…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고백성사 할 생각하니 벌써 눈앞이 깜깜. 아 나 죄지은거 대따 많은데. 걍 사는게 죄지요… 라는 한 어르신의 고백이 마음에 아주 깊게 다가오고 있다. 내일 그거나 한번 써먹어볼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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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뭘할지 어제 계획도 다 세워놨었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왔다. 아니, 아직도 계속 오고 있다. 밖에 비오는거 보니까 나갈 마음이 뚝. 전형적인 한국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는 나는 한국여자답게 바지를 쪼오끔 길게 입는다. 비에 바지밑이 젖어서 질척거릴 생각을 하니까 나가기가 싫더라. 그러고보면 미국애들은 바지를 참 짧게 입는다. 안 걸치적거려서 참 편하겠다 싶으면서도 쪼오끔만 더 길게 입으면 훨씬 보기가 좋을텐데… 라는 오지랍을 혼자 떤다. 그러고서는 또 내 자신에게 한마디 하지. 어우. 너나 잘하세요. ㅋ   

비오는 날은 부치기나 구워 먹고 티비나 보면서 뒹굴거리는게 장땡이다. 그래서 난 어제 계획을 세웠던게 무색할만큼 모든걸 다 내일로 미룬채 하루종일 뒹굴뒹굴 거렸다. 요새 내가 이것저것 알아볼게 많아 맨날 “컴퓨터 화면에 눈으로 구멍뚤기” 시도를 하고 있다보니 눈이 침침해서 아무것도 못하던 날들이 계속 되었었다. 안경을 낀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눈을 좀 쉬어줬어야 했던것 같다. 그런데 어제 오랜만에 푹 잤더니 눈은 말똥말똥, 컨디션은 짱이다. 역시 배고픈데는 먹으면 되고 컨디션 문제는 잠자면 되는구나. 이 단순함의 끝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참고로 컴퓨터 화면에 구멍은 아직 안뚤렸다 (뚤리면 큰일나지!). 또 참고로 처음엔 “뚥리다” 라고 썼는데, 계속 쳐다보니 뭔가가 너무 이상해서 찾아본 사전에 “뚤리다”로 되어 있음을 보고 놀랐다. 이거 원래부터 이랬던거야 아님 이것도 새로 바뀐 한국말인거야? 젠장.

할거 다하고 나서는 몇일동안 벼르고 별렸던 초상화를 그려봤다. 저번주에 필라델피아 갔을때 쌍둥이 언니가 사진을 찍어줬는데 그중에 하나 맘에 들게 나온게 있었다. 내 맘에 드는 내 사진이라 함은, 우선, 평상시 내모습같이 안나왔고, 평상시 내가 잘 안짓는 표정을 지었으며, 평상시 내 얼굴을 안비춰주는 조명발이 포함되있는 사진이라 하겠다. 결국 난 나같이 안나온 사진을 잘나온 사진으로 친다. 그래서 내모습과 다르면 다를수록 최상의 사진이다. ㅋ

어차피 그림을 올리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그림 설명을 좀 하겠다. 이거, 이래뵈도 시간 대따 많이 들인 작품이다. 처음엔 대충 스케치부터 하고 디테일한 부분들을 신경써가며 완성을 시켜갔다. 그러고 나서는 연필로 음양을 주기 시작했는데 계속 그림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렸다 지웠다를 무한정 반복하다가 결국 잔 선들은 다 지우고 만화 비슷한 그림으로 끝내기로 결정했다 (네, 음양넣기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한거 맞습니다). 다 완성된 이 그림은 보기엔 굉장히 단순해보일수 있으나 사실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지우개의 고생이 겉들여 있음을 알린다. 또한 이 그림은 보고 그린 사진과 비교해 봤을땐 거의 비슷한것 같기도 하나, 실제 내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린다. 내얼굴 = 내사진 = 내그림. 이 공식은 이 그림에 확.실.히. 적용이 안되었다. 

한번 음양넣기를 다시 시도해볼까도 생각하고 있다. 음양을 넣으면 좀 더 낳아질까? 괜히 그러다가 더 망치기만 망치고 내 지우개만 고생할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드네. 근데 자꾸 보면 볼수록 드는 생각. 저기… 누구세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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