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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7월, 2010

1. 내 캐모마일에서 드디어 새싹이 나왔는데 달랑 2개. 내가 심은 씨는 분명 20개. 나머지 18개는 어떻게 된거지?

2. 주말에 샤핑을 가서 일할때 입을 옷을 두개 샀다. 난 항상 윗옷이 입을게 없어 샤핑을 가는데 항상 집어오는건 바지나 치마. 그래서 또 윗옷이 입을게 없어 샤핑을 가면 또 집어 들고 오는건 바지나 치마. 십대때부터 이랬으니 이건 못고치는 고질병. 그래도 요번엔 윗옷만 두개를 샀으니 오랜만에 샤핑 성공! (아싸!) 근데 옷은 계속 사는데 왜 계속 입을게 없지? 

3. 난 분명 이곳에 이사올때 내 차 한대에만 가득 실을 정도의 짐들만 가지고 왔다. 차곡차곡 꾸역꾸역 집어 넣기는 했지만 그래도 차 한대에 다 들어갔다. 이사 와서는 산것도 별로 없다. 기껏해야 옷 몇개랑 신발 몇개. 안입는 옷들을 회사동료 딸 줄려고 쌓아놓는게 박스 한개니 그걸로 쌤쌤이라 치고. 근데 지금 쌓아놓는 짐들은 언뜻 봐도 도저히 차 한대에는 못들어 가는 정도. 도데체 이 많은 짐들은 어디서 다 온거지?

4. 내가 구독하는 블로그들은 그 종류가 참 다양하다. 그 중에 한 블로그는 저어쪽, 에스키모들이 산다는 어름집 동네 블로그인데, 어찌어찌 돌아다니다가 구독하게 됐다 (하긴, 거의 모든 블로그가 다 그렇게 구독하게 된거긴 하다만). 근데 블로그 주인장이 몇살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도데체 종잡을수가 없다. 블로그 내용은 대부분이 게임, 만화, 가끔 정치, 블로그 스피어에서 일어나는 싸움들에 관한걸로써, 글의 반은 욕이고 반은 신조어라 하겠다. 욕도 신조어식 욕이라 난 그의 욕도 잘 못알아 듣는다. 그러니깐 난 진짜 그의 글을 10%도 이해 못하는것 같다. 매일 글이 올라오면 멍하니 읽으며 하는 생각. 난 왜 그의 블로그를 계속 구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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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독하는 블로그들 중에는 “민노씨”가 운영하는 “민노씨.네” 라는 블로그가 있다 (http://minoci.net/). 이 블로그는 내가 구독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난 솔직히 민노씨가 뭐하시는 분인지도 잘 모른다. 저널리즘과 블로기즘에 관한 글을 많이 쓰시는 분이니 저널리스트 일지도 모르겠다. 암튼 내가 그에 대해 아는건 그가 사회활동에 적극적인 사람이란것 정도. 난 그의 블로그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고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런 민노씨가 지금 열성적으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상지대 사태”에 관한 것이다. 그는 블로거들과 트위터러들에게 “상지대 사태”에 관해 글을 올릴것을 부탁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7월 30일 교육 쿠데타”를 막기 위해 열심히 활동중이다. 

난 한국에 살지도 않고 한국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상지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극히 개인주의자인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한뜻을 가지고 모여 무언가를 하는것에 동참해 본적도 없다. 내가 내 수준에서 기껏해야 한다는건, 누가 시키지도 않은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라던지,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노력한다던지, 뭐 고정도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쓰자니 참 힘들다.

파워 블로거도 아닌 내가 지금 이 큰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딱 하나다. 나는 “상지대 사태”에 대해 아는것도 없고 도움이 될수도 없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중에 그 사태에 대해 도움이 될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민노씨는 많은걸 바라지 않는다. 그는 그냥 많은 블로거들과 트위터러들이 “상지대 사태”에 관해 떠들어 주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그 사태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 뿐이다. 난 그의 이 간단한 부탁이 과연 그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아직까지도 네트워크의 파워를 그렇게 크게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생각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상 생각으로만 머문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이게 그가 원하는 방식의 “행동”이라면 나도 그의 “행동”을 도와주고 싶다. 나에게 삭발식이나 단식투쟁을 원했다면 난 죽어도 못했음을 여기서 당당히 밝힌다. 특히 단식투쟁!

위에 썼듯이 난 “상지대 사태”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다. 그냥 여기 저기서 읽은것들 뿐. 내가 지금 “상지대 사태”에 관해 아는 것은 감히 콩놔라 팥놔라 할 정도의 것이 못되니 직접 민노씨의 블로그를 찾아가 그의 글들을 읽어보길 바란다. 질문이 있다면 그는 성실하게 대답해 줄꺼라 믿는다. 내가 아직까지도 트랙백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겠으니 (흑흑!) 그냥 그의 글을 링크 걸어보고자 한다. 한번 읽어보고 각자 판단했으면 하는게 나의 바램. 원하시는 분은 요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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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분이 좀 그렇다. 아직까지도 건조한 날씨에 더 익숙해서일까. 온몸으로 느껴지는 끈적끈적함이 불쾌하다기보단 당황스럽다. 저번 여름은  어땠었지 하고 생각해보면 도통 기억이 안나고. 하긴, 생각해보면 뭘해. 당연히 더웠겠지. 그리고 요번 여름도 아 더워, 아 더워 하다가 어느 순간 지나가 있겠지.

지금 내 집은 휑하다. 엿바꿔 먹을려고 가구들을 헐값에 다 팔아먹었다. 카우치는 친구가 자기 언니네 준다고 샀고, TV와 받침대는 자메이카에서 온 나탈리라는 회사 동료한테 팔았고, 테이블과 의자들은 퀸즈에 사는 어떤 한국 유학생에게 팔았고, 커피 테이블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인도 부부에게 팔았다. 그러고보니 나 한 세일즈 하네. 예전에 사람들이 난 뭐든지 잘 팔것 같다고 해보라고 해보라고 해서 부동산 중계업자 자격증을 땄었는데, 집 딱 하나 팔아보고선 관뒀다. 적성에 안맞아서. 더 솔직하게는 세일즈란거 자체가 하기 싫어서.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일은, 이 일을 언제까지 해주시요 하고는 아무 간섭 없이 나혼자 하게끔 내버려 두는 일. 할말들은 이메일로 하고. 근데 사람들은 나를 정반대로만 봐주니 난 어쩔수 없는 이중인격자.  

암튼, 이사 갈때까지 안팔리면 어떻하나 걱정했는데, 그래도 시간을 맞춰 다 팔아서 다행이다. 다들 깎을 생각도 안하고 금방 집어가는걸 보니 너무 싸게 내놨나, 조금 더 부를껄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쪼오끔 있지만 뭐, 내가 이걸로 한몪 제대로 챙길려고 한것도 아니고 말이지. 어차피 싸게 내놓아서 빨리 팔려는게 목적이었으니 이만하면 됐다. 그냥 가져간 사람들이 유용하게, 오랫동안 써줬으면 할뿐이다. 문제는 당장 난 밥 먹을데도 없다는 거. 지금 난 침대에 거꾸로 누워, 이삿짐 싸놓은 상자 하나를 침대 끄트머리에 붙혀놓고, 그 위에 랩탑을 올려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다행히 높이가 대충 맞는다. 당분간은 이 상자가 내 책상이요 밥상이겠구나.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거지 뭐.

이 집에 처음 왔을때가 기억난다. 그때 난 이곳으로 이사 오기전 살던 곳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었던 나는, 그래서 그날 아무데나라도 계약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나는, 이 아파트의 창문들을 보고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해버렸다. 마루바닥에 비치던 환했던 햇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그때의 눈부심. 그 눈부심은 나에겐 희망이었다. 앞으로는 좋은 일들만 생길꺼라는. 

이사 와서는 난생 처음으로 가져보는 나만의 보금자리를 꾸미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새가 나뭇가지들을 주워다가 열심히 둥지를 꾸미는것처럼 나도 그렇게 열심히 내 둥지를 꾸몄다. 혼자서 무거운 가구들 위치를 바꿔보겠다고 한밤중에 끙끙대며 옮겨도 보고, 내가 십자수 떠서 넣어놓은 액자들을 어디에 걸까 몇날 몇일을 고민하고. 남의 집에 가면 항상 화장실을 주의깊게 보는 나는 수건 한장을 살때도 고민을 하며 샀고, 결국 선반까지 사서 수건들을 곱게 개어 놓고는 잡지에 나오는 화장실 같다며 혼자 만족해 했다. 심지어 난 냉장고 속까지도 내가 원하는 식으로 물건들을 놓으며 그렇게 내 마음대로 물건들의 자리를 일일히 정해주었다. 오래된 빌딩의, 보통의 화장실을 가진 이 코딱지만한 스튜디오는 그렇게 나에겐 꿈과, 희망과, 자유의, 그리고 나.만.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잠깐동안은 좋았었다. 아니, 행복했다. 그 망할놈의 50대 아저씨가 일터에서 날 따라다니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누가 날 보는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면 그곳엔 꼭 그의 끈적거리는 눈길이 날 쫓아다니고 있었다. 눈길로 날 벗기는듯한 느낌. 성희롱은 아니기에 괜히 오버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던 나는 할수없이 슬슬 숨어다니기 시작했다. 점점 커져가는 화남.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안좋은 기억들. 서로 상관은 없는 일들이다. 하지만 둘다 비슷하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두달동안 숨어지내다가 어느날 난 그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왜 나랑 얘기하지 않냐, 왜 나를 피하냐, 난 너때문에 요즘에 잠도 못자고 있다, 제발 그 이유를 말해달라, 그런 내용의. 그의 오피스로 갔다간 내가 후회할 짓을 할것만 같아 난 이성을 잃지 안을려고 내자신을 다잡으며 내 보스의 오피스로 갔다. 난 내 보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고, 보스의 도움으로 그에게 짧은 이메일을 보냈고, 그 후로는 그가 날 피해다닌다. 아직까지도. 이 얘기는 그냥 여기서 끝나는 얘기고, 어찌보면 일터에서 충분히 일어날수 있는 헤프닝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난 깨닳았다. 나만의 보금자리를 가지면 모든게 나아질꺼라는 생각은 헛된 생각이었다는걸. 내가 받았던 고통이 그냥 안좋은 기억으로 남은게 아니라 상처로 남았다는걸. 어쩌면 앞으로도 난 평생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살꺼라는 걸.

그리고 작년 겨울은 내 자신의 병신스러움을 한탄하며 참 우울하게 보냈다.   

난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이사를 또 한다. 여기저기 쌓아놓은 박스들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 내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나만의 보금자리를 떠나려니 섭섭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냈던 우울한 시간들로부터 떠나는것 같아 시원하기도 하다. 난 또 이사가면 열심히 내 보금자리를 꾸미겠지. 또 내 물건들의 자리들을 일일히 정해주는라 많은 시간들을 보낼꺼다. 정리정돈하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 재미있는 일이기에 살짝 신도 난다. 하지만 저번 이사할때처럼 가슴이 벅차지는 희망같은건 없다. 희망이 절실히 필요했던 그때의 절박한 심정이 아니어서려니 하는 생각에 난 희망같은걸 생각하지 않는 지금이 좋다. 아직도 풀여야 할 숙제가 나에겐 남아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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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가 이이폰이 갖고 싶나보다. 퀸즈에 사는 그 친구는 전철을 타고 맨해튼으로 일을 다니는데, 전철을 탄 사람들 중에서 아이폰이 없는 사람은 자기 혼자뿐이라며 푸념한다. 나야 전철을 안타고 다니니 잘은 모르겠다만 뭐, 안봐도 비디오다.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이폰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뭔가를 하고 있겠지. 예전엔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아님 걍 멍때리는 사람들을 보는게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불과 몇년만에 사람들 정수리를 보는것이 익숙한 풍경이 되버린게 이상하다. 내가 대학 초기때만해도 숙제는 손으로 써갔었고 컴퓨터 랩에나 가야 느려터진 인터넷 맛을 보곤 했었는데. 기계들의 발전을 잘 못쫓아가는 영원한 아날로그식 뒷북인 나조차도 인터넷이 조금만 느려지면 컴퓨터를 확 깨부시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나는걸 보면 시대가 바뀌긴 했다. 과연 내가 호호 할머니가 됐을땐 날으는 자동차를 탈수 있을까?  

2. 그 친구가 지금 한창 고민중이다. 지름신이 강림하사 아이폰은 지금 당장 가지고 싶은데, 전화기 업그레이드 할려면 아직 몇달을 기다려야되고, 2년 계약이 끝날려면 아직도 1년이 남은 상태다. 근데 지금 이 상태로 아이폰을 살려면 너무 비싼거야. 한 500불, 600불을 내야한다네? 미친거 아냐? 헐. 암튼 주말에 이 친구를 만난김에 같이 AT&T 가계에 가서 어떻게 하면 싸게 살수 있을까하고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업그레이드를 조금 땅겨서 하면 얼마구, 아님 아예 지금 전화번호를 벌금 내면서까지 해약시키고 다시 새로운 번호로 계약을 하면 얼마구, 블라 블라. 긴얘기 짧게해서 제일 싸게 할수 있는게 300불에서 350불. 아, 그것도 4G가 아닌 3G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내 친구, 나에게 이렇게 하면 이게 문제고 저렇게 하면 저게 문제고, 궁시렁 궁시렁. 난 그 친구에게, 그런게 인생사 아니겠냐. 피식. 그 친구 나에게, 그래,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문제지. 둘다 끄덕끄덕.

3. 돈, 돈, 돈, 돈, 돈이 왔어요, 우리들 마음속에도. 그러고보면 내가 이 블로그에다 돈 얘기를 좀 많이 하는것 같다. 나 돈 좋아하냐구? 그럼요. 엄청 좋아하지요. 하지만 나도 원래부터 이랬던건 아니다. 나로 말할것 같으면, 열세살때부터 지금까지 일을 안한적이 없고, 부모님께 용돈 타써본 기억이 없으며, 스물몇살때쯤 아빠가 사준 70년대 포드 Taurus를 사고로 깔끔하게 말아드신후, 잔뜩 화가나신 울 아빠의 더이상 차를 안사주겠다는 선전포고로, 차 없이 다니긴 힘든 콜로라도에서 학교와 일을 다닐려면 차가 필요했던 나는, 내 돈으로 산 차와 차 페이먼트만큼 비싸주신 보험비를 내느라 대학내내 학교 다니며 일을 두군데서 하느라 주말도 없이 살았느니라. 크레딧 카드로 가끔 학비나 차값을 내가면서까지도 한번도 페이먼트에 늦어본적 없으며, 그 많던 크레딧카드 빚을 내 힘으로 다 갚았으며, 돈이 없을때에도 항상 비상금은 어디에 꽁꽁 숨겨 놓았느니라. 그래서 난 어디가도 굶어죽을 인간은 아니며, 돈 빌리고 다닐 인간도 아니며, 돈 개념이 확실한만큼 돈에 대한 걱정또한 없이 살았느니라. 근데 이런 내가 왜 돈 돈 하냐고? 돈 없어서 드럽고 치사한일 당해서 자존심 밑바닥까지 박박 긁히고 무기력증까지 느껴봐봐. 돈이 다가 아니잖아요 소리는 쏙 들어갈껄?      

4. 그래. 돈이 다는 아니다. 하지만 돈은 이세상 모오든 문제의 99%를 해결해준다. 난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정말 없다. 하지만 다시는 돈 때문에 내 자신을 그런 시츄에이션에 넣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난 맨날 어떻게 하면 더 돈을 벌수 있을까 생각 또 생각. 로또 사는게 제일 빠를까효?  

5. 머리를 또 잘랐다. 저번에 잘랐던 언니한테 가서 잘랐는데, 들어오는 날 알아보고는 생각보다 잘하고 다닌다고 칭찬해줘서 잠시 당황했다. 저 아무것도 안했거든요? 내가 저번에 머리 자를때, 난 워낙 머리 간수에는 소질이 없으니 간수하기 편하게 해주소…를 남발했는데, 그때문이었을까, 그 언니 눈에는 내가 생.각.보.다.는. 잘 하고 다니는것처럼 보였나보다. 암튼, 난 내가 아무것도 한게 없으니, 이게 다 언니가 잘 잘라준 덕이지요, 허허허, 하며 칭찬 반사. 기분 좋아진 그녀, 이번엔 내 머리를 이리 저리 만져보더니 머리가 너무 빨리 자란다며 놀란다. 내가 정확히 한달 반만에 왔다고 했는데 그만큼 자란 머리를 본 그녀. 내가 한달에 한번 자르는건 쪼오끔 부담이라고 말한걸 들은 그녀. 요즘 너무 더워 머리 기를 생각이 없다는 내 말을 들은 그녀. 거기에 내가 해준 칭찬이 맘에 들었던 그녀! 난 미용실에 가면 그냥 알아서 예쁘게 해주세요 하고는 내 머리를 볶아먹던 삶아먹던 끝날때까지 가만히 있는 스타일인데, 가위질이 슥삭슥삭 지나간 뒤의 내 머리는 성냥개비의 머리부분 같았다. 아흑.

6. 괜찮아 괜찮아. 내 머리 빨리 자라잖아. 8월달에 집에 가는데, 그때쯤이면 벌써 많이 자라서 자연스러워 보일꺼야. 엄마가 조금 놀랄수도 있겠지만 고슴도치딸을 못알아보진 않을꺼야. 괜찮아 괜찮아.

7. 저번보다 더 짧아진 머리로 일을 갔더니 여자들이 또 난리가 났다. 울 회사에서 나혼자 동양 사람이다보니 곱슬머리들중에 나 혼자만 생머리. 예쁘네, 세련됬네, 더 어려보이네 등등 믿지못할 칭찬들을 남발하는 그녀들. 암튼 미국 애들은 맘에도 없는 소리를 잘한다니깐. 못믿어 못믿어. 내가 너처럼 생머리였으면 나도 그렇게 잘랐을텐데… 하는 소리에, 내가 너처럼 곱슬머리였다면 돈주고 펌 같은건 안할텐데… 로 맞대응. 여자들이 자신들의 외모에 만족 못하는건 진정 유니버설한 진리임을 또한번 깨닳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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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겨찾기에 저장해두고 기분이 안좋을때마다 들여다보는 비디오. 

처음 이 노래를 들은게 십대때인데, 그때 난 아르헨티나에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스페니쉬로 봤고 이 노래도 당연히 스페니쉬로 들었다. Alla fuera bajo la luna gris, alguien que me quiere esta pensando en mi… 영화 내용은 본지가 하도 오래되서 기억도 안나는데, 그때 그 생쥐가 처량하지만 천진난만한 얼굴로 밝은 달을 보며 부르던 이 노래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그 후로도 가끔씩 흥얼흥얼대곤 했다. 미국에 와서는 영어로 듣게 되었고 지금은 가끔씩 영어로 흥얼흥얼. 이거, 쓰다보니 또 지자랑. 쯧쯧.

암튼, 난 지금 내자랑 할려고 이걸 쓰는게 아니라, 이 노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어렸을때부터 취미요 특기가 day-dreaming 하기였는데, 이 노래는 항상 나를 머나먼 곳으로 데려가 주곤 했었다. 그리고 아직은 사랑이 뭔지 몰랐던 시절이었는데도 그 내용들은 꼭 사랑에 관한것만은 아니었었다. 지금은 그냥… 위로가 많이 되는것 같다. 특히 오늘같은 밤. 방금 이 비디오를 스무번 봤는데,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밤새 이짓만 하고있을것 같아 이만 잘려고. 의자를 옮겨가며 석양을 바라보던 어린왕자가 생각나는 지금. 하지만 사람은 그런식으로 위로받고 싶을때도 있는거잖아. 

고화질로 올렸는데 잘 안나오고 있음. 위에건 자막까지 있는데. 흑흑. 급한대로 조금 저화질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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