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스민 꽃들이 다 말라버렸다. 줄기에 고대로 매달린채로. 못다핀 꽃한송이처럼 처량하게 그렇게 된건 아니고, 한창 활짝 펴서 내 조그만 스튜디오를 그 향기로 가득 채우다가 때가 되어 장렬히 사망했다. 한동안 일 끝나고 집에 딱 들어오면 저절로 맡아지는 그 은은한 향기에 기분이 좋았었다. 역시 자스민 꽃향기는 세긴 세, 담배 냄새를 꽤뚥고도 그 향기를 뿜어내니.
몇주전에 내 아파트 바로 맞은편에 있는 CVS 라는 편의점에 뭘 좀 사러갔다가 자스민 화분을 발견했다. 어렸을때 엄마가 마당에 자스민을 심었었는데 그 향기가 온 집안 안에서 감돌았었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다. 사람은 냄새를 제일 잘 기억한대매? 그 항긋한 꽃냄새가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기 때문일까. 난 항상 자스민을 키우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날 그걸 우연히 본거야. 그거 아무데서나 안 팔거든. 그래서 잽싸게 하나 들고 왔지. 야무지게 아직 안피우고 매달려있는 꽃망우리들이 제일 많은걸로 고르고 또 골라서. 그날부터 하나 하나 향기를 내며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어우 예뻐 죽는줄 알았네. 근데 지금은 애들이 다 말라 비틀어졌다. 아 속상해.
예전에 양희은이 어디에 나와서 그러길, 어느날 꽃을 봤는데 너어무 너무 너무 예쁘더라는거야. 그래서 “꽃” 이라는 노래가 나왔단다. 난 그 노래는 안들어 봤는데 대충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알것 같다. 내가 원래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이다보니 식물한테는 별 관심이 없었거든. 근데 나도 늙나봐, 식물이 예뻐지는걸 보니. 매년 봄은 너무 힘들게 보냈었는데 말이지, 요번 봄에는 등산을 하면서, 산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조그만 새싹들이 매주마다 조금씩 크는걸 보면서, 그 새싹들이 울창한 숲으로 바뀌는걸 보면서, 내 생전 처음으로 진짜 봄같은 봄을 맞이했다. 봄, 알고보니까 꽤 괜찮은 계절이더라구. 왜 여태껏 봄을 만물이 깨어나는 계절로는 인식을 못하고 잔인한 4월로만 인식하며 우울하게 보냈을까. 빨랑 여름이나 와버리라고 악담하며 보냈었는데 요번 봄은 좀 아쉽다. 새싹들과 야생꽃들의 모습은 예쁘다못해 경의로웠고, 난 그렇게 요번 봄에 식물을 appreciate하게 됬거든. 그후로 지금 화초 두개를 키우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도데체 물을 얼마나 줘야 되는건지 모르겠어. 너무 많이 줘도 죽는다고 해서 일주일에 두번 줬는데 꽃들이 다 말라버린걸 보면 물이 좀 부족했나 싶기도 하고. 흠.
자스민을 탁자에서 내려놓고는 물도 충분히 주고, 마른 잎들도 띄어 주고, 마른 꽃들도 띄어 줬다. 몰라, 그냥 잡으니까 쑥 나오던데? 그래서 그냥 띄어 줬다. 그러면서 내가 물을 충분히 안줘서 꽃들이 이러나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에 자스민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도 어디서 읽어서 알아, 화초도 다정하게 말하고 하면 행복해 하는거. 그래서 나도 흉내 한번 내봤다. 내가 한 말들의 내용은 그러니까… 넌 이제 꽃 다 피운거야? 이제 언제 또 꽃 피울꺼야 (사실 제일 궁금하고 중요한거임!)? 내가 물 많이 안줘서 꽃들이 다 말라버린거야 아님 더 큰 화분이 필요한거야 (화분이 화초에 비해 살짝 작은것 같기도 함)? 난 너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리서치좀 해볼께. 그냥 죽지만 말고 계속 건강하게 살아서 꽃좀 한번 더 피워봐. 내가 너 꽃 안피울때도 물도 잘 주고 이렇게 얘기도 하고 그럴께. 뭐 대충 이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화를 한참동안 나눴는데, 처음에는 좀 서먹서먹하고 뻘쭘해서 버벅대다가 계속 하니까 점점 자연스런 대화가 되더라구. 근데 웃긴건 대화가 되더라니깐? 진짜루. 갸가 뭐랬냐구? 응, 자긴 물 더 많이 줘야된대. 그래서 내가 그러마 했어.
그렇게 싹 화초 정리를 해주고나니 이젠 꽃들은 없어지고 파란 잎들만 남았다. 꽃들이 한창이었을때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둘걸 그랬어. 진짜 예뻤는데 (이 왠 자식 자랑하는 부모의 심정이라더냐…). 솔직히는 언제 또 꽃을 피울지에 대해 전혀 감각이 없어서이고 또 잘못하면 꽃을 영영 안피울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내가 설마 얘를 죽이기야 하랴만은 그래도 사람일은 모르는 법. 아니 화초일은 모르는 법. 암튼 리서치는 함 해보긴 해봐야겠다. 얘가 너무 까다로운 애가 아니기만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