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잠을 너어무 많이 잤는지 머리가 지끈지끈하네. 지금 밖은 우중충하니 싸리비가 내리는데, 딱 잠자기 좋은 날씨이긴 하다만 진짜, 인간적으로, 더이상은 못자겠다.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해피 땡스기빙 문자들이 날라오는데, 그래요 너도 해피 땡스기빙 하세요 하고 답문자를 보내고는 또 잠이 들만하면 하나 날라오고. 또 답문자 보내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잠에 솔솔 빠져들때 쯤엔 다른 하나가 날라오고. 그런식으로 한 2시간을 개기다가 결국 포기하고 일어나서 나도 울 아바이 오마니 동무께 전화 한번 드렸다. 엄마, 해피 땡스기빙! 그러자 울 엄마, 지금 뭐라고 했는지 확실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1) 뭔놈의 땡스기빙은 땡스기빙; (2) (억지로) 그, 그래. 너도; (3) (인사말 개무시 하시고) 잘 있었어?; 그 셋중에 하나. 난 역시 울 엄마 딸.
2. 생일때 받는 생일축하 메세지는 고마우면서도 당황스럽다. 내 생일이 그들에게 저언혀 중요한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날을 기억해 줬다는게 참 감동스러울 정도로 고맙지만, 난 울 가족의 생일들만 겨우 기억하고 친한 친구들의 생일도 툭하면 잊어먹는 사람인지라 그런 메세지를 받을때면 내가 그들처럼 그런 “기념일” 같은 것들에 대해 센시티브한 사람이 아님이 미안하고 당황스럽다. 암튼, 생일 메세지는 그런데 말이지, 땡스기빙이나 크리스마스 메세지는 사람에게 직접 말할때는 괜찮은데, 문자로 주고 받을때는 쪼오끔 그래. 다 똑같은 메세지들. 해피 땡스기빙. 메리 크리스마스. 다른점은 그냥 어떤 메세지는 웃는 얼굴이 들어가 있다거나 아님 느낌표가 하나에서 세개로 늘었다던가 하는거. 또옥같은 문자들을 주고받고 하는게 너무 형식적으로 느껴져서 그런걸까. 뭔가, 카피 엔드 패이스트 하는 느낌. 이메일 할때 그냥 포워드 버튼 누르는 느낌. 그래도 다 나 생각해서 문자 보내는 거니까 고맙게 생각해야겠지?
3. 주말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건 매일매일 하루종일 커피를 마시다가 안 마시니 나타나는 카페인 윗드로우 현상. 처음엔 모르고 약을 먹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마신 커피 한잔에 두통이 싹 사라지는걸 느끼며 깨닳았지. 커피를 보약처럼 마시는 일인이 아니라 커피 없이는 function을 못하는 일인이군. 암튼 커피 한잔부터 타가지고 올께요. 헐렁한 츄리닝을 질질 끌며 부엌으로 어슬렁 어슬렁.
4. 아, 바로 이맛이야. 흐흐흐.
5.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영화 마라톤을 때렸다. 극장가면 갑자기 팝콘이 땡기듯이 갑자기 마른 오징어 같은게 땡겨서 급하게 나가 사오기까지 했다. 그렇게 버터구이 오징어에 콜라 온 더 락을 갔다 놓고 보기 시작한 첫번째 영화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제목을 보니 실화 바탕의 작품인것 같아 봤는데 오 노. 전개는 너무 느리다고나 할까 너무 잔잔하다고나 할까, 자꾸 지루해져서 집중력은 떨어져 주시고. 죽이고 살리고 하는 장면은 요즘 한국 영화답게 많이 잔인해 주시고. 김복남 친구로 나오는 여자는 진짜 못되 쳐먹어 가지고는 짜증만 나고, 김복남이 무도에서 그런 인간같지도 않는 대접을 받으며 사는것도 너무 병신같아 화가 나고. 거기에 나오는 남자 새끼들은 뭐, 다 죽어야 마땅한 놈들이고. 그냥 그런 짜증만 일으키는, “이끼”를 떠올리게 하던 영화. 그 다음엔 “악마를 보았다”를 봤다. 최민식은 역시 연기를 잘하고 이병헌은 역시 똥폼을 잘잡고. 역시 피를 갖다 들이 붇는 잔인한 장면이 많은 영화. 나쁜놈은 보는 즉시 죽여야지 괜히 살려 뒀다간 피혜만 더 생긴다는 전형적인 공포/스릴러 물의 룰을 잘 보여준 영화. 최민식이 하도 연기를 잘해서 “악마를 보았다”라는 제목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미있게 봤다라고 말하기엔 난 “올드보이”를 너무 재미있게 봤어. 자꾸 비교되네. 암튼 진짜 궁금한거. 진짜 그런 사람들 있나? 아니, 물론 뉴스에서 가끔씩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진짜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나? 그냥 내가 몰라서 그런건가? 진짜 있으니까 그런 영화도 만드는건가 싶어 그래. 아 끔찍해.
6. “죽이고 싶은”을 한 30분 보다가 잠도 슬슬 오고 영화도 별로 관심이 안가서 스탑. 보통 영화는 재미 없어도 끝까지 보는데, 그래서 이 영화도 아마 끝까지 보지 않을까 싶은데, 아 진짜, 이건 안봐도 대충 어떨지 상상이 가니 갈등생기네. 요즘 한국 영화들은 다 왜 이럴까. 공포물은 사람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게 싫다못해 화가 나서 안보고, 미스테리/스릴러 같은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인데, 요즘 한국 스릴러 물들은 다 그냥 그래. 그냥 점점 잔인해지기만 해서 눈을 뜨고 못보게끔 만드는게 트렌드인가.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뒤틀리면 뒤틀릴수록 잘만든 스릴러 물일까? 뭐가 문제일까? 아무래도 스토리라던가, 전개 방식이라던가, 설명 부족이라던가 하는, 그밖의 문제들이 문제겠지?
7. 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빈둥빈둥 거렸더니 벌써 배가 살살 고픈게 조만간 뭘 좀 만들어 먹어야 겠군. 누구는 이런 빈둥거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밖에 나가 뭐라고 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혼자서만 액티브한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말을 하던데. 난 하나도 안 아까워. 비행기타고 멀리 놀러가서 바쁘게 구경하고 다니는건 여행이지 배캐이션이 아니잖아. 밖에 나가 샤핑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하는건 바쁜 하루를 보낸거지 배캐이션이 아니잖아. 진짜 배캐이션은 이렇게 빈둥거리면서 몸과 마음을 푹 쉬어주는건데, 그래서 난 지금 그걸 즐기고 있는데, 왜 그게 아깝다고 생각을 할까. 아직 이런 배케이션의 필요성을 못 느껴봐서 그런가. 아가야. 조금만 있어봐라. 피식.
8. 남자가 놀아달랜다. 오늘밤 12시부터 시작되는 빅세일에 동참하잰다. 딱 한군데를 가고 싶다는데 나도 마침 그 가게에서 사야할게 있긴 있어서 가보면 좋긴 할텐데, 난 또 지금의 꼬질꼬질한 모습에서 벗어나 씻고 꾸미고 하기가 굉장히 귀찮을뿐. 그래도 블로깅인지 뭔지 한다고 하면서 궁금해 죽겠는데도 주소도 안알켜주고, 오늘같은 날도 혼자 있고 싶다고 하는데도 안 삐지고 잠자코 기다려주는 남자니 같이 놀아주긴 놀아줘야 할듯. 아 귀찮아.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