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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9월, 2011

이제 몇시간 후면 한국으로 떠난다. 89년 2월달에 떠났으니 거의 23년만이로구나. 흠…

서울시 성북구 정릉1동 16-92호 10통 2반. 세살때부터 살기 시작해 한국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우리 집이다. 파란 대문을 가졌던 집. 아니, 녹색이었던가. 청녹색이었을수도 있겠다. 그 대문 앞에는 계단이 한두개 있었었다. 그 계단은 앉아서 동네 오빠들이 오징어던가 짬뽕이던가, 그런 게임을 하는걸 구경하던 곳이었고, 맞은편 집 옆에 있던 전봇대에 고무줄을 걸어 고무줄 놀이를 하다가 쉬던 곳이기도 했었고, 그때 기르던 진돗개 갑돌이의 털을 빗어주기도 했던 곳이었다. 가끔 땅위에 분필따위로 그림을 그려 땅따먹기 놀이를 하다가 숨이 너무 차오르면 빨갛게 읶은 얼굴을 식히기도 하던 곳이었지.

그 파란 대문 바로 안쪽으로는 대추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대추나무와 집 안쪽에 있던 대추나무에서는 대추가 꽤 많이 열렸었다. 새파랗던 대추들은 아삭아삭하니 맛있었었다. 그 대추들을 땋아서 잘게 자르거나 부수어 소꿉놀이도 꽤 많이 했었지. 하지만 가끔 송충이었던가 쐐기라고 했던가, 그런 징그러운 벌레들이 나무에서 떨어져서 기겁을 할때도 있었다. 가을이 되어 그 새파란 것들이 갈색 점박이로 변할때면 그 맛은 더 달달해 졌었다. 그리고 그 대추들이 거의 다 갈색으로 변할때쯤엔 아빠는 동네 사람들에게 다들 바구니를 들고 오라고 했었다. 런닝 차림의 아빠가 가느다란 대추 나무를 무지막지하게 흔들던 장면은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대추들이 하늘에서 눈처럼 막 떨어지던 장면도. 동네 사람들은 엄마가 나중에 다 나눠 줄것을 알면서도 다들 바구니를 들고 나와 떨어진 대추들을 열심히 주웠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추석전에 그 대추들을 따지 않았을까 싶다. 추석 차례상에 대추가 올라가는게 맞다면. 그렇게 우리 집은 파란 대문의 집과 쌍둥이네 집 이외에도 대추나무 집으로 불렸었었다.

앞집 창훈이네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피아노 학원을 하던 집이 있었다. 피아노를 가르치던 스타일이 맘에 안 들어서 차라리 그집 고양이 새끼들과 놀고 싶었던. 거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내가 종이인형을 사러 들락날락거리던 문방구가 있고, 거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가끔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슈퍼가 있고, 거기서 한참을 더 걸어가면 친절한 약사 아줌마가 있던 약국이 있다. 그 약국을 지나 더 오른쪽으로는 가본적이 없다. 집에서 너무 멀었거든.

앞집 창훈이네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우리 외할머니네가 있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심심풀이삼아 하던 조그만 구멍가게와 세를 줬다던 복덕방. 항상 할어버지들이 득실득실거리던. 할머니네 구멍가게에서는 가끔 쵸콜렛이나 사탕을 훔쳐 먹기도 했었는데 나중에 커서는 그게 굉장히 많이 죄송스러웠었다. 모르겠다, 요번에 가서 할머니한테 고백할지도. 암튼 그 가게를 지나 좀 가면 교회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계속 쭈욱 올라가야하는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 중턱까지밖에 못가봤다. 계속 올라가는건 집에서 너무 멀었거든.

이밖에 집에서 버스로 한정거장 거리에 있던 학교와 엄마를 따라 몇번 가봤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던 길음시장. 그게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거 전부다.

지금의 내가 살던 동네는 빌딩으로 꽉 차있고 고가도로가 들어선, 굉장히 바삐 움직이는 곳이라 들었다. 우리집이 있던 곳도 빌딩이 들어섰을테고 나와 같이 컸던, 우리 아빠의 자랑이었던, 대추나무들도 없어진지 오래일테다. 그렇게 내가 유일하게 알던 한국의 한 장소는 이젠 없어졌다. 그리고 난 이제 한국에는 아는 장소가 하나도 없다.

나는 한국이 항상 무서웠다. 글쎄다… 무섭다라고밖에 설명을 못하겠다. 나는 분명 한국에 대한 생생한 추억이 있다. 그런데 내 추억의 주인공인 그 나라는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서 난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나라만 바뀌었나? 사람들도 바뀌었지. 난 이제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어떤 고민들을 하며 사는지, 그들의 생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 모르겠다. 완전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사람들은 나랑 똑같이 생겼고 나랑 같은 언어를 쓴다. 또 한가지. 한국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한국사람들이다.

상상이 안간다. 그래서 무섭다. 피식.

난 이제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에 일어나 JFK 공항으로 간다. 비행기를 타고 15시간동안 몸을 배배 꼬다보면 어느새 한국에 도착해 있겠지. 15시간이라… 길다… 끙…

암튼 그렇게 한국에 갑니다. 2주 있다 와서 소감 올릴께요. 다들 잘 지내고 계시길.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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