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왔다. 집에 왔다… 라고 쓰니 기분이 이상하다. (부모님) 집에서 (내) 집으로 왔는데, 그러니깐 결국 둘다 “Home Sweet Home” 인데 기분이 이렇게 다르니. 항상 콜로라도 집에 다녀올때면 그후 한 일주일 정도가 많이 힘들다. 뭐, 막 우울하고 그런건 아니다. 아무도 없는 썰렁한 집에 왔다고 해서 무섭거나 외롭다거나 하지도 않다. 어쩌면 단지 두시간의 시간차에서도 느껴지는 Jet Lag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지 바캉스 휴유증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어쩌면 나이든 두 노인네를 그곳에 두고 나혼자 하고 싶은거 해보겠다고 혼자 뛰쳐나온것에 대한 죄책감일지도 모른다. 뭐 그리 대단한걸 하는것도 아니면서 말이지.
엄마는 내가 부탁했던 돼지갈비를 잔뜩 해줬다. 얼마나 많이 했던지 오는 날까지 먹다 왔는데도 많이 남을 정도였다. 이거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 가져가. 너 아니면 이거 먹을 사람도 없어. 엄마, 이거 비행기 안에 못가져가. 조카들 오면 걔내나 해줘. 울 엄마는 원래 그런걸 별로 안좋아 해서 안드시고, 아빠는 지금 틀니와 전쟁중이라 집에 고기 먹을 사람이 없긴 하다. 울 아빠는 지금 틀니에 적응 못해서 밥을 잘 못드시는 바람에 가뜩이나 작고 마른 노인네가 살이 쪼옥 빠져있었다. 틀니를 뺀 아빠의 얼굴을 난 차마 똑바로 쳐다 볼수가 없었다. 왜 자꾸 틀니를 빼냐고, 계속 끼고 있어야 적응도 되고 이것저것 많이 먹을수 있지 않겠냐고, 다정한 소리 대신 짜증 비슷한 소리를 많이 한 나. 난 울 아빠의 틀니를 안꼈을때의 쭈굴쭈굴한 윗 입술도 괜찮다. 뭐, 젊었을때의 잘생긴 모습은 이젠 더이상 찾아 볼수는 없지만 지금 노인네가 잘생겼단 소리 들어서 뭣하랴. 난 또 그의 마른 모습도 괜찮다. 워낙 살이 안찌는 체질이라 항상 그런 모습이었으나 그렇다고 특별히 어디 아픈데는 없는 그다. 단 하나, 날 자꾸 짜증나고, 불안하고, 안쓰럽고, 슬프고, 화나고, 미안하게 만들었던건, 울 아빠가 원래 고기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거. 근데 지금은 눈 앞에 잔뜩 쌓여있는데도 못드시네. 울 아빠 이가 아직 성했을때 갈비 한번 거하게 못사준게 너무너무 후회되는거 있지. 항상 어르신들이 그러잖아. 부모님이 평생 살아 있을줄 아냐고. 응. 난 항상 울 부모님이 평생 살거라고 생각했지.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아니, 그 반대의 상황이 상상이 안된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근데 평생 고기 뜯을것 같았던 울 아빠가 지금 고기를 눈앞에 두고도 못 먹는단 말이지. 엄습하는 불안감.
아, 왜 자꾸 글이 이렇게 써질까. 그냥 갔다온 소감을 가볍게 쓰고 싶었는데.
집에 가서 가족들 보고, 예쁜 조카님들도 보고, 친구들도 봐서 좋았다. 딱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만 보고 와서 기분이 좋다. 작은 조카님은 내가 사준 공주 파자마를 아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그 선물을 받은 이후로 난 계속 이모이모이모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어야 했고. 여자애다보니 톤이 높은데다 목소리는 왜 이리 커주신지. 선물이 얼마나 맘에 들었던지 꼭 자기 옆에서 자야 한다고 해서 하루는 언니네 가서 자고 왔다. 자면서 요놈이 날 얼마나 발로 차던지 아파 죽는줄 알았네. 그래도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픈 조카님이다. 큰 조카님은 결국 울 언니의 압박에 못이겨 선물 쵸이스를 바꿔야 했다. 난 레고 가계에 같이 가서 원하는거 사줄려고 했는데 울 언니가 50불 이상은 안된다고 못박았나보다. 결국 아이셔플을 원한다고 해서 그걸 사주고 왔다. 왠만하면 아이팟 사줄려고 했는데 그건 아직 레고보다 비싸더라구. 큰 조카님, 원하던 선물은 받았는데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불안한 모습으로 계속 허둥지둥. 내가 아이튠 다운 받아서 온갖 잘난척을 다 하며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켜주니 그제서야 기뻐하는데 아, 이모된 자의 뿌듯함이라고나 할까. 내가 큰 조카한테는 안쓰러운게 많다. 그리고 요번에 언니와 많은 얘기를 나누다가 그놈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커졌다. 그래서 그놈 생일겸 크리스마스엔 아무리 비싼거라도 자기가 원하는걸 사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이럴꺼면 요번에 그깟놈의 레고 사주고 올걸 그랬다.
친구들은 여전했다. 매일 보던 몇달만에 보던 항상 어제 본듯 그대로의 관계를 지속하는 친구들.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와 그들과의 관계에서 본질적인것이 바뀌지 않음이 좋다. 이 친구 만나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저 친구 만나 저런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돈, 직장, 미래, 인생, 여자, 남자. 항상 얘기하는건 똑같은 얘기들인것 같다, 얘기하는 우리들이 바뀌는것 뿐이지. 서로간의 생각들에 차이가 있어도 좋다. 그들과의 식사와 술자리와 커피와 수다와 욕설을 난 다 즐기다 왔다. 수다란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임이 분명하나 정신적인 면에서는 꼭 필요한 일인것 같다. 그리고 내가 편하게 수다를 떨수 있는 친구들이 있음이 좋다. 아니, 행복하다라고 말할수 있을것 같다.
그렇게 집에 다녀왔다. 내가 집에 다녀오면 한 일주일 정도 힘들다고 위에 썼는데, 그 중에는 혼란스러움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것 같다. 그 혼란스러움엔 동부와 서부의 문화차이와 생활방식에서 오는 혼란스러움도 있겠으나 그것보다 더 큰 혼란스러움은 내 머리속 생각에 있다. “지나가는 생각들” 이란 카테고리는 어떤 주제에 관한 나의 생각들을 쓰는 카테고리다. 그런데 요즘은 그 카테고리에 넣을 글을 못쓰고 있다. 맞던 틀리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 내맘대로 이것저것 쓸만도 하건만, 내 생각들에 대해 내 자신이 확신이 없고 혼란스러우니 글을 쓸수가 없다. 그런데 요번 집에 다녀오고나니 지금의 나는 더 혼란스럽다. 그냥… 어떻게 사는게 잘 사는건지를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