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
댓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해였다. 나를 비롯해 나의 가족들에게도.

울 어무이 아부지는 드디어 비지니스를 접으셨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터라 온 가족이 쌍수를 들어 환영한 일이지만 막상 은퇴를 하신 두분은 지금 집에서 심심해 돌아가시기 직전이다. 평생을 열심히 일하신 분들이시니 이해도 가고 걱정도 된다. 나 자신도 일을 안하는 내 자신을 상상해본 적이 없기에.

두분은 가을엔 한국에서 두 딸들을 일주일 간격으로 시집을 보냈다. 그리고 한국에 간김에 이런저런 건강검진을 받으셨는데, 깡깡 마른 울 아빠는 의외로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엄마는 목 디스크 수술을 받고 오셨다. 예전 세탁소할때 팔을 많이 써서 오십견이 왔나 했었는데 어깨가 아니라 목이었나보다. 암튼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와서 참 다행이다. 아빠는 담배를 한동안 끊었었고 (귀엽게도) 나한테 자랑하러 전화까지 하셨었는데, 방금 통화한 엄마의 제보에 으하면, 아빠가 쓰레기 버리러 갈때 몰래몰래 피우므로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다 하신다. 참 여전한 울 엄마 아빠시다.

내 쌍둥이 언니 ”갸”는 나의 결혼식 일주일 뒤에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뭐, 일부러 날짜를 맞춘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하나는 경주에서, 하나는 부산에서. 암튼 가까운 날짜탓에 오랜만에 한국에 나가신 울 부모님은 돌 하나로 새 두마리를 잡으셨지. 이런 효녀들을 봤나.

난 다들 알다시피 결혼을 했다. 그 전년도 12월 까지도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었는데 1월 말쯤엔 판사님 앞에서 선서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생은 어찌 될지 모를 일이라니깐요. 둘이 살림을 차린다고 이사 몇번 하고, 한국에 가서 결혼식을 하고, 돌아와서 이것저것 하다가, 차 사고가 나서 치료를 받다보니 또 일년이 그냥 확 지나가 버렸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찌보면 허무하기도 한 일년이다.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많은 변화들도 생겼다. 생각지도 못했던. 우선 결혼을 하니 정신적으로 안정이 팍 되면서 더이상 솔로일때 느꼈던 외로움/불안감/쓸쓸함 같은 감정들이 없어졌다. 항상 공중에 붕 떠있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두발을 땅에 단단히 붇히고 서있는 기분이다. 꼭 꿈에서 깬것 같다. 많은 것들이 선명히 보이고 많은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었다. 난 더 성숙해졌고, 더 이해심이 많아졌고, 더 너그러워진것 같기도 하나, 또한 어떤것들에 대한 싫고 좋음은 더더욱 확실해져서 어떻게 보면 더 날카로와지기도 했고 참을성도 없어졌다. 특히 지난해에 굉장히 싫어진게 분명한 것들로는, 쓸데 없고 남에게 도움도 안되는 오지랍과, 남에게 마음의 깊은 상처를 남기는 생각없는 말들과, 술자리 하면 떠올리는거 전부. 전에 종혁님이 쓴 술자리에 대한 포스팅을 읽고 격하게 동의했었는데 덧글은 못남겼다. 암튼 그런것들. 그래서 난 “북촌방향”도 모락모락 피어나는 짜증을 겨우겨우 참으며 봤다. 피식.

인간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건 나중에 좀 자세히 쓰고싶네. 암튼, 긴얘기 짧게 하자면, 이젠 다른 사람들에 대해 별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 이세상 혼자 살겠다는 뜻은 아니고. 흠… 역시 이건 나중에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써야겠다. 암튼 그렇다.

저번 년도에 좋았던건… 결혼. 판사님 앞에서 선서 했을때의 떨림. 내 손에 끼어져있는 반지가 주는 든든함. 무서우면서도 설레였던 한국으로의 여행. 오랜만에 본 친척들의 웃는 얼굴들. 내 결혼식날의 해프닝들. 내 쌍둥이 언니네의 둘째고양이 아가. 새로 이사온 집의 창문들. 내가 등산한 동부의 높은 산들. 겨울산행. 아이폰. 붕어사만코. 매일 피는 담배. 매일 마시는 커피. 그리고 매일 보는 내 남편.

저번 년도에 안 좋았던건… 다시 찾아온 몸의 통증. 내 마음에 새로 생긴 상처. 부모님에 대한 걱정. 내 쌍둥이 언니네의 첫째고양이 꼬마의 죽음. 친구. 나와 손발이 착착 맞고 친하게 지냈으나 지금은 회사에서 사라진 Austin과 Bakersfield의 콘트롤러들.

그래도 좋은게 안 좋은것보단 많네. 그리 나쁜 해는 아니였던듯?

요번 해는 흑룡의 해라 하대. 울 집에는 용이 세마리나 있는데. 울 엄마가 그러는데, 작년으로 우리집에서 큰 삼재가 나갔대나 모라나. 용 세마리에다가 쥐띠도 삼재여서 울집에 6대 4로 삼재가 아주 제대로 들었었다고 하대. 요번 해부터는 좋은 일들만 생길꺼라고 밝은 목소리로 새해 초 덕담을 하는 울 엄마에게 난 그럴꺼라고, 정말 이젠 좋은 일들만 생길꺼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그렇게 될거라 믿는다.

요즘 근황

엄… 마지막 포스팅이 10월 11월이라… 벌써 세달전이군… 쯧쯧…

이거이, 너무 오랜만에 들어오다보니 들어오다가 버벅버벅. 막상 뭘 좀 써볼려니 쭈뻣쭈뻣. 끙.

연말을 맞이하야 많고 많은 일이 있었던 한해를 돌아보고자 나도 남들처럼 멋지게 한번 한 해 마무리 포스팅을 해보고자 했으나! 그러나! 그것도 나의 귀차니즘으로 인하여 이렇게 패스해버린 지금!

안녕하소~ 참 오랜만입니다 그려. 허허허.

전 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포스팅을 올린 직후 친구가 놀러 왔었는데, 그때 이후 마음이 좀 안좋아 여러가지 감정들을 추스리느라 한달이 훅 지나가버리더니, 그 다음은 차 사고가 났는데 이노무 고질병인 허리가 또 안좋아져서 또 치료를 받느라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네요. 여태껏 일주일에 세번씩 치료받다가 딱 요번주부터 두번씩 가는데, 여태껏 치료 받으랴, 여기저기 엑스레이며 MRI 찍으랴, 또 여기저기 의사들 보러 다니느라 바빴네요. 거디다가 설마 벌써 잊진 않으셨겠죠? 나 결혼한거? 내가 이래뵈도 꾸려가야 할 살림이 있다오. 뭐, 남편이 많이 도와주긴 하지만 아… 아쉬운 뒷처리여… 그렇게 전 돈도 벌고, 살림도 하고, 치료도 받고 하느라 좀 바쁘게 지냈답니다.

거기다가 울 회사가 연말을 맞이하야 많은 사람들을 잘랐네요. 참 못됐지 않아요? 하필 연말에 자르다니. 나쁜 놈들! (궁시렁 궁시렁!) 암튼 그래서 일복이 터진 저는 가뜩이나 바쁜 연말/연초에 일을 무진장 했답니다. 이제서야 바쁜게 좀 지나가고 숨을 쉴만 하네요.

아! 거기다가 제가 아이폰 4S 나온날 아이폰 4를 샀거든요. 잊혀지지도 않는 10월 4일! 아직 매장엔 안나와서 할수 없이 걍 4로 샀는데, 뭐, 4S 안샀다고 섭섭한거 하나 없을정도로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노무 아이폰때문에 제 생활에 아주 큰 변화가 찾아왔네요. 그러니깐… 제가 요즘 농장이랑 동물원을 운영하느라 꽤 바쁘거든요. 그래요. 나도 알아요. 암말 하지마세요. 제발… OTL

암튼, 오늘은 제가 하도 오랜만에 들어와 좀 버벅거리는 감이 없지 않다 아니하지 아니하지 아니할수 없기에 오늘은 좀 짧게 마치고 조만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새해부터는 블로깅을 열심히 하기로 하…기엔 이미 벌써 늦은 감도 없지않아 있기에 과감히 패스! (사실 새해 계획같은건 세우지도 않았음. 나란 여자, 새해 계획따윈 개한테 줘버리는 쿨한 여자. 음하하하!)

어케, 아이폰으로라도 짧게나마 자주자주 포스팅을 하…기엔 랩탑앞에 앉아 쓰는걸 좋아하는 일인 납시요. OTL

암튼… 자주 보길 바랄께요. 제바알~!

한국, 다녀오다

한국은 자알 다녀왔습니다. 한국 가서는 너무 바빠서 그랬는지 시차도 많이 못느꼈는데 집에 돌아오니 긴장이 풀렸는지 여태껏 비몽사몽했네요. 겨우 이주동안 갔다 온건데 느낌상으로는 몇달동안 갔다온것 같아요. 한국에서야 어디를 가던 버벅거리던게 당연한 거였다만, (가령 맥도날드에서 아이스커피를 시켰는데 블랙으로 줘서 크림좀 달라고 했다가 외계인 취급을 당했다던가 아님 여러개의 리싸이클통들 앞에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멍하니 서있다던가 하는), 미국까지 돌아와서 계속 버벅대는건 도데체 왜일까요. 허허허.

결혼식은 번갯불에 콩 구어먹듯 정신 하나도 없이 얼렁뚱땅 했습니다. 저에겐 아아주 만족스러운 결혼식이었죠. 결혼식에 로망이 없는 저같은 분들은 한국에서 결혼하는거 와안전 추천합니다. 이건 뭐, 따로 준비할게 하나도 없어. 그냥 몸만 가면 알아서 다 해줘. 드레스도 그래. 하나 입어보니 예뻐. 근데 두번째것도 예뻐. 그래서 아, 역시 웨딩드레스는 걍 다아 예쁘구나 하고는 두번째걸로 했지요. 한곳에서 머리 해줘, 화장 해줘, 귀걸이랑 신발까지 다 준비되 있으니 저같은 귀차니즘에 빠진 사람한테는 딱이더군요. 그렇게 아주 만족스러운 결혼식을 하고 왔네요.

제 결혼식에는 저희 친척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오셨어요. 제가 어릴때 보고 여태껏 못봤던, 하지만 딱 보자마자 다 알아봐서 너무 신기했던 분들이요. 얘기로만 들었던, 하지만 한번도 못봤던 사촌동생들도 봤지요. 짜식들, 많이 컸더라구요. 분명 제가 한국에 있었을땐 이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던 녀석들인데 말이죠. 전 결혼식날 사람들 보고 반가워서 웃고 떠들고 하느라 저 포함해서 아무도 제가 울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요, 신부 대기실에서 할머니 보고는 울컥해서 화장 고치느라 난리를 쳤네요. 결혼식 바로 전이었거든요. 난 왜 우리 할머니만 생각하면 그럴까요. 어렸을때 할머니 가게에서 훔쳐먹던 과자들 때문에 죄송해서 그럴까요. 그거, 요번엔 꼭 말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럴 기회가 없었네요. 쩝.

신랑은 경주사람인데요, 시댁이 경주에 있으니 결혼식도 경주에서 했습니다. 덕분에 경주구경은 아주 제대로 하고 왔네요. 불국사와 석굴암은 정말 너무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사진에서 보던것보다 훠얼씬 멋있었네요. 하지만 전 경주시내에 있는 기와지붕들이 참 재미있고 흥미로왔어요. 밑은 주유소고 빵집인데 지붕은 기와로 되있고. 재밌어 재밌어…

제주도는 흠… 쪼오끔 실망했어요. 그러니깐, 전 제주도가 좀 하와이 같을꺼라 생각했나봐요. 하늘! 바다! 섬! 뭐, 그런 자연의 모습? 그런데 제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개발이 많이 되었있는, 그리고 계속 계발중인 그런 곳이더라구요. 무슨 Theme park들이 그렇게 많아. 아, 물론 바다도 봤고 날라갈듯한 거친 바람도 맞아봤지요. 바람이 너무 불어서 우도를 못가본게 좀 아쉽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많이 먹은걸로 퉁 쳤어요. 흑돼지는 솔직히 그냥 삼겹살 같았는데 기름기 좔좔 흐르는 고등어 구이는 완전 짱! 옥돔은 좀 특이했는데 맛은 있었구요.

먹는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국에서 먹은것들 중에 진리는 짜장면이었네요. 짜장면 완전 짱! 사랑해요 짜장면! 우윳빛깔 짜장면! 세상에, 그렇게 싸고, 그렇게 맛있고, 그렇게 빨리 배달이 된다니! 제가 여태껏 미국에서 먹어온 짜장면이란건 도데체 뭐였을까요. 흑흑. 아, 그리고 제가 순대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한국의 찹쌀순대는 저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드랬죠. 그랬드랬죠… 아, 순대!

아침엔 시어머님이 고봉으로 밥을 퍼주시곤 했죠. 그럼 전 그걸 다 먹곤 했죠. 거의 소화가 될때쯤에 점심이, 그리고 그것이 겨어우 소화가 될때쯤에 저녁이 절 기다리곤 했죠. 저희 시부모님들은 제가 결혼식을 해야된다는걸 깜빡 하셨나봐요. 그냥 막 잔뜩잔뜩 퍼주시고 잘 먹는걸 흐믓해 하시더군요. 전 거기에다 짬짬이 다른 음식들도 먹어야 했죠. 그때 아니면 못먹으니까요. 그렇게 전, 여기서 가지고 간 바지가 안 맞아서 하나 사서 입어야 될만큼 살이 쪘었고, 제 인생 통털어 몸무게가 peak일때 결혼식을 하고 사진들을 찍었죠. 평생 갈 사진들인데 말이죠. 잠깐만요. 저 눈물좀 닦을께요.

아직 사진들은 못받았는데 받으면 하나정도 선별해서 올리도록 하죠. 제에에에에일 날씬하게 나온걸루요. 잠깐만요. 이노무 눈물이 아직도… 허허허.

이거 원, 23년만에 한국에 다녀오니 쓸것도 많은데 거기다 결혼식에 여기저기 구경에 휴… 도데체 뭐부터 써야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우선 생각나는것 부터 썼네요. 이 포스팅도 자꾸 미루다보면 한없이 미룰것 같아서요. 암튼 투비 콘티뉴 입니다. 그동안 다들 잘 지내고 계셨죠? 그랬길 바래요.

그렇게 이 글은 뚱딴지 없는 마무리로. ㅋ

한국가기 몇 시간 전

이제 몇시간 후면 한국으로 떠난다. 89년 2월달에 떠났으니 거의 23년만이로구나. 흠…

서울시 성북구 정릉1동 16-92호 10통 2반. 세살때부터 살기 시작해 한국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우리 집이다. 파란 대문을 가졌던 집. 아니, 녹색이었던가. 청녹색이었을수도 있겠다. 그 대문 앞에는 계단이 한두개 있었었다. 그 계단은 앉아서 동네 오빠들이 오징어던가 짬뽕이던가, 그런 게임을 하는걸 구경하던 곳이었고, 맞은편 집 옆에 있던 전봇대에 고무줄을 걸어 고무줄 놀이를 하다가 쉬던 곳이기도 했었고, 그때 기르던 진돗개 갑돌이의 털을 빗어주기도 했던 곳이었다. 가끔 땅위에 분필따위로 그림을 그려 땅따먹기 놀이를 하다가 숨이 너무 차오르면 빨갛게 읶은 얼굴을 식히기도 하던 곳이었지.

그 파란 대문 바로 안쪽으로는 대추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대추나무와 집 안쪽에 있던 대추나무에서는 대추가 꽤 많이 열렸었다. 새파랗던 대추들은 아삭아삭하니 맛있었었다. 그 대추들을 땋아서 잘게 자르거나 부수어 소꿉놀이도 꽤 많이 했었지. 하지만 가끔 송충이었던가 쐐기라고 했던가, 그런 징그러운 벌레들이 나무에서 떨어져서 기겁을 할때도 있었다. 가을이 되어 그 새파란 것들이 갈색 점박이로 변할때면 그 맛은 더 달달해 졌었다. 그리고 그 대추들이 거의 다 갈색으로 변할때쯤엔 아빠는 동네 사람들에게 다들 바구니를 들고 오라고 했었다. 런닝 차림의 아빠가 가느다란 대추 나무를 무지막지하게 흔들던 장면은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대추들이 하늘에서 눈처럼 막 떨어지던 장면도. 동네 사람들은 엄마가 나중에 다 나눠 줄것을 알면서도 다들 바구니를 들고 나와 떨어진 대추들을 열심히 주웠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추석전에 그 대추들을 따지 않았을까 싶다. 추석 차례상에 대추가 올라가는게 맞다면. 그렇게 우리 집은 파란 대문의 집과 쌍둥이네 집 이외에도 대추나무 집으로 불렸었었다.

앞집 창훈이네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피아노 학원을 하던 집이 있었다. 피아노를 가르치던 스타일이 맘에 안 들어서 차라리 그집 고양이 새끼들과 놀고 싶었던. 거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내가 종이인형을 사러 들락날락거리던 문방구가 있고, 거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가끔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슈퍼가 있고, 거기서 한참을 더 걸어가면 친절한 약사 아줌마가 있던 약국이 있다. 그 약국을 지나 더 오른쪽으로는 가본적이 없다. 집에서 너무 멀었거든.

앞집 창훈이네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우리 외할머니네가 있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심심풀이삼아 하던 조그만 구멍가게와 세를 줬다던 복덕방. 항상 할어버지들이 득실득실거리던. 할머니네 구멍가게에서는 가끔 쵸콜렛이나 사탕을 훔쳐 먹기도 했었는데 나중에 커서는 그게 굉장히 많이 죄송스러웠었다. 모르겠다, 요번에 가서 할머니한테 고백할지도. 암튼 그 가게를 지나 좀 가면 교회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계속 쭈욱 올라가야하는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 중턱까지밖에 못가봤다. 계속 올라가는건 집에서 너무 멀었거든.

이밖에 집에서 버스로 한정거장 거리에 있던 학교와 엄마를 따라 몇번 가봤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던 길음시장. 그게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거 전부다.

지금의 내가 살던 동네는 빌딩으로 꽉 차있고 고가도로가 들어선, 굉장히 바삐 움직이는 곳이라 들었다. 우리집이 있던 곳도 빌딩이 들어섰을테고 나와 같이 컸던, 우리 아빠의 자랑이었던, 대추나무들도 없어진지 오래일테다. 그렇게 내가 유일하게 알던 한국의 한 장소는 이젠 없어졌다. 그리고 난 이제 한국에는 아는 장소가 하나도 없다.

나는 한국이 항상 무서웠다. 글쎄다… 무섭다라고밖에 설명을 못하겠다. 나는 분명 한국에 대한 생생한 추억이 있다. 그런데 내 추억의 주인공인 그 나라는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서 난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나라만 바뀌었나? 사람들도 바뀌었지. 난 이제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어떤 고민들을 하며 사는지, 그들의 생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 모르겠다. 완전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사람들은 나랑 똑같이 생겼고 나랑 같은 언어를 쓴다. 또 한가지. 한국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한국사람들이다.

상상이 안간다. 그래서 무섭다. 피식.

난 이제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에 일어나 JFK 공항으로 간다. 비행기를 타고 15시간동안 몸을 배배 꼬다보면 어느새 한국에 도착해 있겠지. 15시간이라… 길다… 끙…

암튼 그렇게 한국에 갑니다. 2주 있다 와서 소감 올릴께요. 다들 잘 지내고 계시길. 꾸벅.

지진과 허리케인

며칠전 낮에 일하다가 책상에서 오는 진동을 느꼈다. 마우스를 잡고 있는 내 오른쪽 팔이 부르르르 떨렸었다. 처음엔 가벽을 두고 옆에 앉은 피터가 다리를 떠나 싶었다. 그놈이 다리를 떨면서 다리가 자신의 책상을 흔들고 내 책상으로 그 떨림이 전해 오는줄 알았거든. 근데 한참을 떠는거야. 아 얘가 왜 안하던 짓을 하지. 일이 좀 안풀리나. 그러고 있는데 요번엔 발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밑에층에서 무슨 기계를 돌리나? 근데 어? 지금 내가 있는데가 일층인데?

조금 후에 진동은 멈추었고 사람들은 웅성웅성대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지진이라데. 버지니아와 워싱턴 디씨쪽에 지진이 일어났나본데 이쪽까지도 여파가 온거라데. 그렇게 난 난생 처음으로 지진이란걸 느껴보았다. 솔직히 그땐 별 생각 없었는데 와,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좀 무섭더라구. 괜히 영화의 장면들이 생각이 나면서. 그래서 안도하면서, 감사함을 느끼면서, 다 지나간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랬었는데…

지금 나 쪼오끔 무섭다?

요번엔 허리케인. 이름이 아이렌이라지 아마. 오늘 밤부터 시작해서 일요일 밤까지, 잘하면 월요일 아침까지 이어지는거라 금요일 퇴근할때 회사에서 다들 조심하라고, 월요일 아침에 일 오기 전에 전화부터 해보라고 당부를 하고는 보내줬다. 그리고 오늘 밖에 파킹랏을 보니 다들 차들을 나무쪽에서 떨어진 빌딩쪽으로 쪼로록 세워나서 나도 차를 옮겨놓긴 했었다. 아 진짜 뭔가 오긴 오나부다 하며 계속 창밖의 날씨만 봤었는데, 막상 저녁이 되니까 비 좀 오고 바람 좀 부는 정도. 그래서 난 에이, 그럼 그렇지. 암튼 사람들은 별것 아니것 가지고 호들갑을 잘 떨어요 그러고 있었는데. 그러고 있었는데…

지금 밖에는 난리가 났다. 소나기같은 비는 아니지만 비는 계속 오고 있다. 그리고 이층이 끝인 빌딩에서 이층에 살고 있는 우리집엔 천정이 한군데가 세서 쓰레기통을 받쳐놨다. 하지만 지금 나를 제일 겁나게 하는건 바깥의 바람소리. 햐. 난 바람소리가 이렇게 무서운줄은 몰랐네. 아직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더 심해지면 뭐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어젯밤 잘려고 누웠는데 열린 창밖으로 다람쥐들이 격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었다. 난생 처음 들어본 소리긴 한데 아마도 다람쥐들이 맞는것 같다.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쓰레기 버리려 가면 놀라서 후다닥 도망가는 놈이 몇 있거든. 며칠전 내가 깜빡하고 차의 창문을 안닫고 들어 왔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내 차 뒷자석에 도토리 잔뜩 까먹고 간 흔적을 남긴 놈들. 그놈들이 그렇게 격하게 싸운게 이 날씨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인가. 아 불안해 죽겠네.

오늘 잠은 다 잔것 같다.

그냥 잡담

1. 스트레스 때문인지 장염에, 몸살에, 힘 빠짐에, 어지럼증에, 그리고 끝이 없는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 글쎄다… 난 뭐 딱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끼는건 아닌데 내 몸은 이렇게 반응하고 있다. 대따 웃겨. 그런데, 다른건 그렇다 쳐도, 이 끝없는 배고픔은 뭐지? 모오든 바지가 너무 껴서 치마를 (어쩔수 없이) 즐겨입는 요즘? 쫄쫄 굶어도 모자랄 판에? 나 조만간 결혼식도 하는데?

2. 참고로 나 결혼식 준비 하나도 안하고 있음. 뭐, 뭘 준비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한국 사정도 하나도 모르겠고. 지금도 날짜만 알지 어디서 하는지도 모름. 그래서 어차피 이렇게 된거, 걍 난 아무것도 몰라효 컨셉으로 그냥 내 몸 하나 끌고 결혼식 날 갈 예정임. 그래서 이게 지금 내 결혼식인지 남의 결혼식인지 구분도 못하고 있음. 몰라아아. 뭐 어떻게든 되겠지이이. 음하하하.

3. 전 한번도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딱히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혼식의 의미랄까 아님 이유랄까, 뭐 그런거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솔직히는 결혼식 할 돈으로 어디 오부지게 놀러갔다 오는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디, 마츄피츄나 ,이집트나, 그리스나, 아프리카. 뭐 그런 곳으로. 하지만 결국 전 결혼식이란걸 하고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암튼, 인생은 항상 계획한 대로만 되는건 아니군요. 허허허.

4. 결혼식 한다니까 다들 머리좀 가만 냅두고 기르라고 해서 여태껏 손 안대고 걍 엉망진창으로 다니고 있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결혼식 날이야 알아서 꾸며준다 치고, 다른 날들은 어떻게 할건데? 한국 가서 머리할 시간도 없을텐데? 그래서 일요일날 큰맘 먹고 세팅펌 했는데 머리 한번 감으니까 다 풀렸다? 하기 전이랑 똑같애. 참 내. 이거 지금 다시 해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중. 나 그런말 잘 못하는데. 흠.

5. 결혼식이 다가온다고는 해도 어차피 난 준비하는 것도 없는 관계로다가 요번 Labor Day땐 동부에서 제일 높다는 산으로 캠핑 간다. 요번엔 White Mountains! 예이! 뉴햄셔와 매인 주에 걸쳐 있는데, 아마도 제일 높은 Mountain Washington (6,288 ft)으로 갈것 같다. 이곳은 Appalachain Trail이라고, Northeast와 Southwest를 이어주는 큰 산맥중에 한 곳인데, 그 중에서 제일 북동부쪽에 있는 곳이다. 저번에 갔던 Adirondacks도 이 산맥중에 일부분이고. 저번에 간곳보다 더 어렵고, 꼭대기쯤이 아주 사람을 말려 죽인다는데. 난 뭐, 저번 그 산들 이후로는 동부쪽 산들이 감도 잡히고 해서 별 걱정은 안될 뿐이고. 그래도 힘들껀 아니까 그냥 마음의 준비만 묵묵히 할 뿐이고. 에너지바는 미리 미리 챙겨 놔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고. 이 캠핑 다음주에 한국을 가니 선크림 하나만은 열심히 쳐발라야겠다는 결심 뿐이고. 결혼식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를 약간의 죄책감 같은건 있는데… 아 나도 몰라. 지금 안가면 못가. 그렇게 난 또 산으로 고고씽!

6. Hero (영웅) 이라는 뮤지컬의 공짜 티켓이 두장 생겨서 어젯밤에 맨해튼에 있는 링컨센터에서 보고 왔다. 안중근 의사 얘기인데, 한국에서 그 뮤지컬 하러 왔나봐. 난 한국말로 뮤지컬 본거는 처음이라서 대따 신기했는데, 미국 사람들을 위해 무대 위쪽에 자막도 준비했더라. 근데 자막이란게 그래. 있으면 안보고 싶어도 꼭 보게 돼. 그래서 한국말 들으면서 영어 자막도 보느라 혼자 대따 바빴다. 근데 또 그래. 딴에 영어좀 한다고 번역 잘못한거 있으면 대따 거슬린다? 어, 이렇게 하면 미국애들은 이해 못하는데? 그러면서 혼자 오지랍 떨고. 이것도 병이다. 암튼, 내가 그렇게 딴 생각을 많이 할수 있었던건 여러가지의 이유때문이었는데… 1막때는 흐름이 뚝뚝 끊기는 기분에 집중이 잘 안됐고. 그 와중에 여자 주인공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 너무 거슬렸고. 2막때는 흐름도 좋고 감정선도 좋았는데 나중에 좀 질질 끄는 기분이었고. 그 여자 주인공 노래 부르는 스타일은 또 계속 거슬렸고. 몰라, 성악 전공한 여자인것 같은데, 아예 성악으로 하던가 아님 아싸리 뮤지컬 스타일로 하던가 하지, 에중간 하게시리 하는것도 거슬린데 거기다가 너무 흐느끼며 불러서 거부감만 상승. 뭐, 뮤지컬의 ㅁ도 모르는 나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구요. 그래도 무대장치나 조명, 쫓기고 쫓아가는 표현들은 아주 좋았다. 그리고 비록 파킹비로 36불이란 거금을 냈다만은, 그래도 오랜만에 본 뮤지컬이 공짜라 더 좋았다. 왠지 돈 번 기분? 흐흐흐.

7. 며칠 비실비실 대다가 이제 정신좀 차리고는 밀렸던거 한꺼번에 쓸려니 힘드네. 요즘엔 기운 없을때마다 괭이님 사진들을 들여다 보며 힘을 얻는 중. 근데 얘, 인간적으로, 너무 예쁘지 않아? 난 지금 살살 녹는중. 스르륵.

인간관계

내가 이십대 초중반때 일이다. 그때 같이 놀던 한 그룹의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걔네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도 왠만큼 잘 했으니 1.5세에 속했으나, 당시 아주 티피컬한 1.5세였던 나와는 여러면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1.9세쯤 되는 애들이었다. 우선 라이프 스타일부터가 달랐다. 걔네들은 벌써 학교도 졸업하고 일을 하며 돈을 벌 때였고, 남친이 없던 그녀들은 한달에 한번씩 자기네들끼리 모여 뮤지컬을 보거나 비싼 식당에 가서 분위기 내는걸 즐겨했다. 명품 물건들은 당시 그녀들의 대화에 중심이었고, 난 그녀들을 통해 프라다나 페라가모 따위의 물건들을 처음 구경하기도 했다. 그때 난 투잡을 뛰었었고, 연애도 했었고, 졸업쯤을 맞이해 갑자기 불붙은 공부의 재미에 푹 빠져서 솔직히 놀 시간따윈 없었는데, 그리고 같이 뮤지컬 가거나 비싼 식당에 갈 돈도 없는 가난한 학생이었는데, 그래서 그녀들이 나를 자꾸 불러 그 그룹에 속하게 하려는게 이해가 안갔었다. 그래도 난 그들의 호의에 대한 고마움에 나름 시간을 내 그녀들과 같이 어울렸었다. 나와 가까웠던 몇몇 사람들은 내가 그 그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같이 어울리는걸 못마땅해 했었지만, 난 나와 아주 다른 사람들과 한번 어울려보고 싶은 호기심에 그런 말들을 무시하고 계속 어울렸다.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나와는 아아아주 다른 사람들이었고 당연히 끝은 아주 안좋게 끝났다. 세대차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여자들끼리의 시샘과 신경전, 계략들과  뒷담화. 내가 생각하는 “우정”과는 너무나 다른 “우정”의 definition을 가진 그녀들과의 헤어짐은 언제간 일어날게 뻔한것 이었겠으나, 순진했지만 또 나이브했던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때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어쨌는지, 그 이후로 난 남친 없는 여자들로만 꽁꽁 뭉친 그룹은 좀 경계하는 편이다. 풉.

그떄 생긴 버릇일까. 아니, 원래의 내 성격이겠다만. 난 어느 순간부터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안보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생각이야 다 다르겠다만은, 그리고 그건 아주 당연한 거겠다만은, 아주 기본적인 value system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못 어울린다는걸 깨닳았기 떄문이다. 끼리끼리 논다? 햐. 옛날 어르신들 진짜 똑똑해 그러고보면. 보고싶은 사람만 보고 살기에도 이렇게 시간이 없는데 왜 내가 보기 싫은 사람들과 보대끼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해? 상식이 안 통하는데 풀긴 뭘 풀어? 그냥 서로 안보면 편한것을. 그래서 난 인정사정없이 목을 댕강 잘라내는 망나니처럼 사람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일을 아주 잘한다. 냉정하게.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다. 아무 문제 없이. 내가 사람들과의 문제점들을 굳이 풀려고 하지 않고 그냥 묻어둘려고 했던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한두번의 대화로 쉽게 풀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고, 난 이미 상처를 받았고, 혼란스러웠고, 또 뭔가를 누구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는게 귀찮고, 힘들고, 그냥 하기 싫었다. 정말, 누군가에게 내 입장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구차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그것이 한때 가까웠던 사람일수록 더.

딱 일주일 사이에 네 사람이 나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어느날 한 사람은 내 집 문앞에 와서 문을 두들겼고, 그 다음날 한 사람은 문자와 전화 메세지를 남겼고, 그 다음날 한 사람은 이메일을 보냈고, 그 다음날 한 사람은 내가 하지도 않는 페이스북을 통해 메세지를 보냈다. 딱 폭탄맞은 기분이었고 심적으로 너무 힘든 일주일이었다. 아, 물론 지금도 많이 힘들다. 나를 다시 찾는 그 사람들이 딱히 고맙지도 않을만큼.

이메일과 페이스북은 아직 손도 못댔고, 집에 찾아온 사람과 전화한 사람과는 대화를 했다. 대화를 하고 또 했다. 설명 하고. 설명 듣고. 또 설명 하고. 또 설명 듣고. 다른날 또 대화를 했다. 한번 대화 할때마다 힘이 쪼옥 빠진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 또 숨고 싶고 또 피해버리고 싶다. 그 설명해야 함의 구차함이 너무 비참하다.

그러면서 참 안타깝고 슬프기도 하다. 한번 비틀어진 관계는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걸 알기에.

여태껏 내가 잘라냈던 사람들과 다시 화해를 한적이 없다. 그래서 화해란 것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좋다. 오해들을 풀고 화해란걸 한다 치자. 결국 입장차이 아니던가. 이해했다 치자. 그럼 그 다음은? 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친하게 지내? 분명 내 속에선 뭔가가 바뀌었는데? 그럼 내가 왜 그런 가식적인 관계를 이어가야 하지? 그런건 사회생활에서도 충분히 하는데?

입장의 차이를 이해했는데도 내 마음이 예전같지 않다는건 내가 소인배여서인가. Forgive & forget 하지 못하는 이유는 뒷끝이 많은 나의 쪼잔한 인품때문인가. 화해의 손을 반갑게 맞이 못하는건 나의 쥐똥만한 그릇때문인가.

모든 문제는 대화로 푸는게 답이란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식이 옳은 방식이 아니란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내가 제일 쉽게 할수 있는 방식이었고 여태껏 날 편안하게 만들어준 유일한 방식이었다.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하는 요즘. 내 자신과 내가 여태껏 해왔던 인간관계 방식에 대해 많은 회의를 느끼고 있다.

팔로우

모든 새 글을 수신함으로 전달 받으세요.